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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일하는 노인 수 자체는 다른 나라들보다 많은 편이며 지금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60세 이상 취업자는 고용시장 성장세를 견인했고 그 결과 한국은 모든 연령대 중 60세 이상 취업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 하지만 문제는 ‘영 올드’가 산업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를 살려 활동하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 고령층 대부분은 평생 경력과 무관한 단순 노무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일하는 60세 이상 고령층은 1년 전보다 29만8000명 불어난 677만8000명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전체 취업자 수는 12만3000명 늘었는데, 2.4배에 달한다. 그 결과 지난해 60세 이상은 1982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취업자 수가 가장 많은 연령대로 올라섰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일하는 노인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2013년 9월까지 60세 이상은 10대를 제외하면 취업자 수가 가장 적은 연령대였다. 하지만 그해 10월 20대 취업자를 뛰어넘기 시작하더니, 2020년 9월 30대, 2023년 5월 40대를 차례로 제쳤고 지난해 9월에는 50대보다도 많아졌다. 지금은 전체 취업자의 4명 중 1명(23.5%·지난해 11월 기준)이 60세 이상이다. 세계적으로도 한국은 고령층의 경제활동이 활발한 나라로 꼽힌다. 2003년엔 65세 이상 10명 중 3명(28.6%)만 일을 하거나 일을 구하는 등 경제활동을 했는데, 2023년엔 38.3%로 껑충 뛰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003년에도 1등, 2023년에도 1등이다. 2위인 일본과의 격차는 2003년(일본 20.2%) 8.4%포인트였다가 2023년(일본 25.7%) 12.6%포인트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처우는 여전히 열악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2분기(4∼6월) 65세 이상 임금 근로자가 가구주인 가구 중 월평균 근로소득이 100만 원 미만인 가구의 비율은 46.7%로 절반에 달했다.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65세 이상 근로자 중 절반 가까이는 일해서 받는 돈이 한 달에 100만 원도 안 된다는 의미다. 고령 근로자 절반이 일하는 이유로 ‘생계 유지’를 꼽고 있는 점 역시 일해도 가난한 노인들이 여전히 많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김지연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은 “중년기 이후 취업자들은 육체적 단순노동에 종사하고 있다”며 “노동 공급이 점점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중장년층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들을 개선해 직무의 연속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특별취재팀▽팀장 장윤정 경제부 차장 yunjung@donga.com▽호주=송혜미, 네덜란드·독일=강우석,일본=신무경, 영국=김수연 기자뉴욕=임우선 특파원, 파리=조은아 특파원서울=전주영 이동훈 조응형 신아형 기자}
국제 유가가 3% 가까이 오르며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미국 정부가 러시아산 원유에 대해 대규모 제재에 나선 여파로 풀이된다. 1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2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78.8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전 거래일보다 2.25달러(2.9%) 오른 수준으로, 지난해 8월 12일 이후 5개월 만에 가장 높다. 3월 인도분 브렌트유도 배럴당 81.01달러로 1.25달러(1.6%) 뛰었다. 브렌트유 역시 지난해 8월 26일 이후 최고치다. 미국 정부가 10일 가스프롬을 비롯한 러시아 석유 업체뿐만 아니라 러시아산 석유를 수송하는 유조선 등에 대해서도 제재하겠다고 밝히면서 유가는 급격히 오르고 있다. 10일부터 WTI와 브렌트유는 각각 6.5%, 5.3% 뛰었다. 이번 제재로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해 오던 중국, 인도가 원유 수입 경로를 중동이나 미국 등으로 변경할 경우 국제 유가가 더 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국제 유가까지 상승하면서 국내 기름값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이미 전국 주유소의 평균 휘발유 판매가격은 지난해 10월 20일부터 매일 오르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14일 오후 3시 30분 현재 전국 주유소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L당 1705.14원으로 전날보다 2.85원 올랐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지난해 하반기(7∼12월) 가계대출을 조였던 은행들이 올해 1분기(1∼3월)에는 대출 문턱을 낮출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기업의 신용 위험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됐다. 1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올 1분기 가계 주택 대출에 대한 대출태도지수는 6을 보였다. 지난해 4분기(10∼12월)에는 ―44였다. 이 지수가 플러스(+)면 은행들이 대출 심사를 완화하겠다는 뜻이고, 마이너스(―)는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가계 일반대출에 대한 대출태도지수도 3으로 지난해 4분기(―39)보다 크게 올랐다. 이에 따라 생활안정자금과 주택 실수요자 중심의 주택담보대출, 비대면 신용대출 등의 심사가 다소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은행이 예상한 1분기 신용위험지수는 34로 전 분기(28)보다 6포인트 높아졌다. 신용위험지수가 높을수록 가계와 기업이 빌린 돈을 갚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특히 지난해 4분기 33이었던 중소기업의 신용위험지수는 올해 1분기 39까지 올라갔다. 대기업도 11에서 28로 상승했고, 가계의 신용위험지수도 22에서 28로 상승했다. 한은 관계자는 “기업의 신용위험은 업황 부진, 자금 사정 악화로 높은 수준이 이어질 것”이라며 “가계의 신용위험 역시 소득 개선 지연, 채무상환 부담 지속 등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대출수요지수는 지난해 4분기 7에서 올해 1분기 25로 18포인트 뛰었다. 대출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크게 늘었다는 뜻이다. 이번 대출행태 서베이는 지난해 11월 26일부터 12월 6일까지 국내 금융회사 203곳의 여신 총괄 책임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회사를) 관두라고 하는 건 차별 아닌가요.” 지난해 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 프랑크 괴틀 씨(67)는 유럽 전역 30여 곳에 지점을 둔 화물 운송 업체의 중역이다. 10년 전에 일찌감치 노후 준비를 끝냈는데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괴틀 씨는 “작년부터 연금을 받기 시작했지만 현역으로 계속 뛸 것”이라고 했다. 네덜란드, 영국, 독일 등에서 만난 ‘영 올드(Young Old·젊은 노인)’들은 왕성한 경제 활동을 자부하고 있었다. 영국 런던 현지 은행의 위험관리 업무 총괄자인 맵 카트리 씨(64)는 “직장에서 책임을 다하며 느끼는 성취감이 있다”고 했다. 그는 “75세가 넘어도 은행에서 활약하는 사례도 있다. 나 역시 건강만 허락한다면 70대에 새로운 기회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의 현실은 암울하다. 선진국 ‘영 올드’들과 달리 한국의 고령층은 현역 시절 숙련된 기술을 살리지 못한 채 단순 임시직에 그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022년 기준 55∼64세 국내 임금근로자 중 34.4%는 기간제 근로자 등 임시고용직인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압도적 1위로 2위 일본(22.5%)과 격차가 10%포인트 이상 났다. 올해부터 1965년생을 시작으로 954만 명 규모의 2차 베이비붐 세대가 순차적으로 은퇴하면 소득 절벽에 시달리는 노인들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최근 “구조개혁이 없을 시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40년에는 0%대로 추락할 수 있다”며 “고령층의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럽선 숙련 인력 ‘귀하신 몸’… 독일 68세 금융인 “정년 2년 지나도 금융회사 일해”〈2〉 ‘영 올드 현역’이 뛴다네덜란드-영국, 정년제도 없애고… 독일은 정년 67세로 단계적 상향민관 플랫폼으로 경제활동 지원한국 고령층 일자리, 복지성 대부분… “직무설계 등으로 질적 성장 유도를”“돈 때문에만 일하는 건 아닙니다. 일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게 여전히 재밌어요.”지난해 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 벨리 아부다크 씨(68)는 2년 전 정년을 맞이했지만 아직도 현지 금융회사에서 활약하고 있다. 아부다크 씨는 “난방비, 관리비 등 웬만한 물가가 다 올랐는데 월급과 연금을 동시에 받기 시작하니 생활비에도 물론 제법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서 인터뷰한 건축 설계 엔지니어 얀 브륀덜 씨(73)는 네이메헌 지역의 철도 시스템을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맡아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브륀델 씨는 “네덜란드 스히폴 국제공항과 네이메헌을 오가는 열차가 1시간에 세 번 정도 오는데, 이 배차 간격을 줄이기 위해 작업 중”이라며 “2029년까지 완공하는 것이 목표인데 그때까지는 당연히 일을 하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그는 “지금도 업무 의뢰가 계속 들어오는 중”이라며 전기 분야 엔지니어로서 본인의 전문성에 대한 자랑스러움도 내비쳤다.● 유럽에서는 70대도 엔지니어로 활약본보가 네덜란드, 독일, 영국 등의 선진국에서 만난 ‘영 올드’들은 정년 이후에도 숙련자로서 활발히 현장을 누비고 있었다. 정부, 지역사회 등이 이들을 적극 지원하는 가운데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영 올드’ 채용에 나서고 있다. 숙련 노동자가 갈수록 귀해지는 데다 ‘영 올드’ 소비자의 부상에 발맞춰 고령 근로자를 중시하는 움직임이다.아부다크 씨는 “숙련된 인력이 퇴직하지 않고 회사에 오랜 기간 기여하는 게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시점”이라며 “주요 분야에서 전문 인력들이 부족해 기업들의 걱정이 많은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브륀덜 씨도 “제법 많은 기업들이 나 같은 숙련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분위기”라며 “대기업들 역시 고령층의 근속 기간을 늘리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실제로 독일 기업 보쉬(Bosch)는 기술력 유지를 위해 ‘시니어 전문가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고령 근로자에게 교육, 멘토 역할을 맡기고 있으며 영국의 보험사 아비바 역시 고용 인력의 3분의 1 이상을 50대로 구성하고 있다.각 정부도 ‘영 올드’들이 일터를 오랫동안 지킬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들을 펼치고 있다. 네덜란드와 영국은 정년 제도를 사실상 없앴으며, 독일은 현재의 정년 연령인 만 65세를 2029년까지 만 67세로 단계적으로 상향하고 있다. 독일 노동사회부 관계자는 “퇴직 이후 재취업을 희망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경력 컨설팅도 제공하고 있다”며 “2023년 1월부터는 조기 퇴직한 고령자도 연금 삭감 없이 추가 소득을 무제한으로 받게 되는 등 퇴직자의 재취업을 다방면으로 장려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정부 차원에서 ‘생애 설계 서비스’를 출시한 사례도 있다. 2020년 영국 노동연금부는 중장년층들이 노후 준비를 스스로 점검하고 재취업 관련 정보를 직접 얻을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 ‘Mid-life MOT’를 출시했다. MOT는 차량의 정기 점검을 의미하는 용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중장년층이 스스로 삶을 점검하고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파악하자는 취지를 담았다.영국 런던에서 파트타임 컴퓨터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김기정(가명·58) 씨는 “정년을 일괄적으로 정하기보다는 다양한 형태의 고용이 존재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롭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학교·기업 등도 시니어 일자리 지원교육기관, 지역사회 등도 ‘영 올드’들이 고유한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레이던, 틸뷔르흐 등 5개 대학이 합심해 노인들을 위한 시니어 학습 프로그램 ‘노인을 위한 고등교육(HOVO)’을 만들었다. 암스테르담자유대에서 HOVO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카롤린 판베르헌 디렉터는 “(프로그램을 통해) 고령층들이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다지고 있다”며 “최근에는 번역일을 하는 60대 학생이 건축 수업을 들은 다음 관련된 책을 번역해 출간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네덜란드에는 은퇴자들을 매년 전 세계 개발도상국의 중소기업으로 파견시키는 ‘PUM’이란 비영리단체도 있다. 베테랑 근로자들의 수십 년간 숙련된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기업에 전수해주는 역할이다. PUM은 1978년 설립된 이래 현재까지 전 세계 4만 개 이상의 기업과 협력해 왔으며, 네덜란드 정부의 재정 지원도 받고 있다.독일에서는 전국 각지에 있는 900여 개의 ‘시민대학’이 영 올드 교육 현장으로 자리 잡았다. 정부 지원하에 양질의 강사진들이 다양한 분야의 교육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한다. ‘시니어사무소’도 독일 고령자의 사회 참여를 돕는 대표적인 기관으로, 50세 이상 구직자들에게 현지 지역 기업 프로젝트 등을 소개하고 연결해준다.전문가들은 한국도 고령층이 양질의 일자리를 갖고 장기간 근무할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기존의 고령자 일자리는 질적인 수준과 지속 가능함이 뒷받침되지 않는 ‘복지성 일자리’가 대부분이었던 게 사실”이라며 “직무 설계, 취업 개선 능력 등을 지원해 시니어 일자리의 질적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특별취재팀▽팀장 장윤정 경제부 차장 yunjung@donga.com▽호주=송혜미, 네덜란드·독일=강우석,일본=신무경, 영국=김수연 기자뉴욕=임우선 특파원, 파리=조은아 특파원서울=전주영 이동훈 조응형 신아형 기자}
지난해 9월 본격화된 영풍-MBK파트너스 연합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간 경영권 분쟁이 약 4개월 만에 분기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오는 23일 임시주주총회가 예고돼 있고, 이에 앞선 17일 고려아연 주요 주주이자 캐스팅 보트인 국민연금(7일 기준 고려아연 지분 4.5% 보유)이 수탁자 책임위원회를 통해 임시 주총에서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하게 됩니다.임시 주총을 앞두고 고려아연의 역사, 이 과정에서 장 씨 측과 최 씨 측의 갈등, 이번 경영권 분쟁의 진짜 이유, 양측이 예고한 경영 방향 등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고려아연 두고 벌인 최(崔)·장(張) 갈등의 역사고려아연은 1974년 영풍에 의해 설립됐습니다. 1949년 이후 동업을 이어오던 최씨 가문과 장씨 가문이 1970년 경상북도 봉화군에 석포제련소를 지은 뒤 두 번째 아연 제련소를 차렸습니다. 석포제련소는 청정지역인 데다 주변이 산지라 공장 확장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때마침 정부에서 울산 온산지역에 비철금속단지 조성에 나서자, 아연을 비롯한 납 등 비철금속까지 제련할 수 있는 제련소를 만들기 위해 고려아연을 설립합니다. 이후 회사가 커가는 과정에서 장 씨는 영풍을, 최 씨는 고려아연을 맡게 됩니다. 1976년까지 비슷했던 장 씨(28.33%)와 최 씨(26.97%) 영풍 지분율은 고(故) 최기호 공동창업주가 별세하기 2년 전인 1978년부터 최씨 가문에서 지분을 정리하면서 차이가 나기 시작합니다. 당시 장 씨(27.17%), 최 씨(12.88%)의 지분율은 15%포인트가량 벌어졌는데, 이후 이 같은 비율이 유지됐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 초 최 씨와 장 씨 간 1차 경영권 분쟁이 터집니다. 최 공동 창업주의 장남이자, 최윤범 회장의 부친인 최창걸 명예회장이 영풍 지분 매집에 나서면서입니다. 하지만 당시 장 씨 측은 계열사를 동원해서 방어했습니다. 양측의 지분 격차가 줄어들지 않는 상황에서 출혈 경쟁만 이어지다가, 1996년 2월 양 가문은 서로 신사협정을 맺게 됩니다. 장 씨는 고려아연에 대한 의결권을 최 씨 측에 넘기고, 최 씨는 영풍에 대한 의결권을 장 씨에 넘기기로 합니다. 이 계약은 지난 2016년까지 총 20년간 유지됐습니다. ● 공개매수 경쟁에 고려아연 주가 240만 원까지 치솟아2차 분쟁에 대해 양측 의견은 다르지만 장 씨 측은 2022년 8월 최 회장이 한화와 지분 교환을 했을 때로 보고 있습니다. 고려아연은 한화의 해외 계열사에 유상증자하는 대신 한화는 장내 매수, 자사주 맞교환 등으로 고려아연 주식을 취득했습니다. 고려아연은 LG화학, 현대자동차 등과도 신주 발행, 주식 맞교환 등의 거래를 합니다. 장 씨 측은 고려아연 지분을 희석하면서 최 회장이 우호 세력을 확보했다고 주장하고, 최 회장 측은 미래 신성장 사업 확보를 위한 전략적 제휴였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어쨌든 장씨 가문보다 턱없이 부족했던 최 씨의 지분율이 우호 세력을 통해 꽤 커진 것은 사실입니다. 최 회장이 영향력을 넓히고 나서자 장 씨 측은 태클을 걸고 나섰습니다. 최 회장은 2024년 3월 주총에서 해외 법인 합작뿐만 아니라 국내 법인을 대상으로도 제3자 유증이 가능하도록 정관 변경을 추진했습니다. 좀 더 많은 사업 제휴를 통해서 우군을 확보한다는 복안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 장 씨 측은 반대하면서 정관 변경을 부결시킵니다. 주총 이후 양측의 갈등은 더 깊어집니다. 최 회장 측에서 양 가문 공동 경영의 또 다른 상징인 서린상사를 접수합니다. 서린상사는 영풍그룹의 비철금속 해외 유통 및 판매 계열사로, 고려아연이 대주주지만, 대표자는 영풍 쪽에서 내세우는 형태로 공동 경영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고려아연은 서린상사의 이사회 9명 중 8명을 고려아연 사람으로 채웠습니다. 대표도 즉각 교체했는데, 서린상사의 전임 대표는 장형진 영풍 고문의 둘째 아들인 장세환 씨였습니다. 최 회장의 일격을 맞은 장 씨 측은 즉각 반격에 나섰습니다. 자금력을 통해 고려아연 지분 확대에 나선 것이죠. 장 고문은 국내 최대 사모펀드(PEF)인 MBK파트너스에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33.13%) 중 절반 이상인 16.56%+1주를 넘기기로 약속합니다. MBK파트너스는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해 9월 13일 고려아연 지분을 주당 66만 원에 사들이겠다고 공개매수에 나서면서 경영권 분쟁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이후 최 회장이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을 통한 대항 공개매수에 나섰고, 양측은 서로 공개매수 가격을 올리면서 출혈 경쟁에 나섭니다. 영풍-MBK 측의 최종 공개매수 가격은 83만 원, 고려아연의 최종 공개매수 가격은 89만 원까지 올라갔습니다. 양측이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 공방을 벌이면서 고려아연의 주가는 미친 듯이 올라갔습니다. 공개매수가 종료된 이후 잠잠해질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양측에서 장내 매집에 나서면서 고려아연 주가는 100만 원을 훌쩍 넘겼습니다. 지난달 6일에는 장중 240만 7000원까지 올랐습니다. 공개매수와 장내 매집을 통해 영풍-MBK파트너스는 40% 넘는 지분을 확보했고, 최 회장은 기업들의 우호 지분을 제외하고 17.5%의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분율 차이는 나지만, 국민연금 등 주요 주주들의 결정이 남았고, 고려아연에서 집중 투표제 도입을 히든 카드로 내놓으면서 이번 임시 주총은 안개 국면입니다. 집중 투표제는 주식 1주당 선임할 수 있는 이사 수만큼의 의결권을 갖습니다. 한 명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지만, 열 명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 10표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다수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 주주는 한 명에게만 표를 몰아줄 수 있어, 적은 지분이더라도 전략에 따라 원하는 후보를 이사회에 진입시킬 수 있습니다. 애초 영풍-MBK파트너스는 신규 이사를 대거 선임해서 경영권을 가져온다는 생각이었지만, 집중 투표제를 도입할 경우 이 같은 계획이 어그러질 수 있습니다. ● 명분 싸움 돌입한 양가문… 소액 주주 결정은?결국 양 가문의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키는 소수 주주가 쥐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 씨와 장 씨, 장 씨와 최 씨는 서로를 공격하면서 경영권 분쟁에서 명분을 쌓으려 하고 있습니다. 최근 여론전을 통해 상호 비방에 나선 것도 소수 주주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장 씨 측은 최 회장 부임 이후 회사 자금으로 자신의 영향력 확대에 나섰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최 회장의 ‘트로이카 드라이브’ 추진 과정에서 과도하게 많은 회사 자금을 썼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트로이카 드라이브는 이차전지 소재, 신재생에너지, 자원순환 사업 추진 등 미래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현대차·LG화학·한화 등과 전략적 동맹을 맺었던 것을 의미합니다. 이 과정에서 조 단위가 넘는 회삿돈을 썼다는 겁니다. 장 씨 측은 그런데도 고려아연 주가가 40만~50만 원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등 주주 가치 제고도 하지 못했다면서 최 회장의 경영 능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이 외에 원아시아파트너스를 통한 SM엔터테인먼트 지분 투자, 미국 전자폐기물 재활용 업체인 이그니오 투자로 회사에 손실을 입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최 회장이 고려아연을 동원한 자사주 공개매입에 나서면서 대규모 차입을 일으킨 것도 회사의 부담을 키웠다면서 공격하고 있습니다.반대로 최 씨 측은 석포제련소 경영에 실패한 영풍이 고려아연을 인수할 경우 회사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맞섰습니다. 또 영풍이 석포제련소 관련 환경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고려아연 경영권 장악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석포제련소는 폐수 무단 배출에 따라 조업 중단 판결을 받았습니다. 오는 2월 26일부터 58일 동안 조업을 중단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연 제련 특성상 조업 중단에 약 2개월, 조업 재개까지 약 2개월의 준비 기간이 필요해 사실상 올해 상반기(1~6월)까지 실적이 크게 부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번 조업 중단이 끝이 아니라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5년 4월 봉화군은 석포제련소가 아연 생산 후 발생한 잔재물의 장기 방치로 인해 인근 토양이 오염됐다며, 약 10년 동안 토양을 정화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영풍에 따르면 이행 명령 지시 후 9년이 지난 지난해 6월 말까지 정화 면적은 전체 30.6%에 불과했습니다. 이행 마감 완료 시한인 올해 6월 말까지도 41.9%에 불과한 수치를 예상했습니다. 사실상 추가 징계가 불가피한 상황으로 조업 중단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관련해서 영풍 소액주주들도 문제 제기에 나섰습니다. 영풍 소액 주주들은 영풍의 석포제련소가 2013년부터 2022년까지 76건의 환경 법령 위반 사실이 적발됐고, 최근 노동자 사망 사건으로 대표이사 두 명이 연속으로 구속됐다고 지적했습니다. ● 고려아연 경영 누가 잘할까결국 주주들의 선택은 누가 고려아연을 맡아 경영을 잘할 수 있을지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양측이 내놓은 주장은 모두 허점이 있습니다. 먼저 최 회장은 고려아연 성장을 내걸었습니다. 기존에 진행돼 오던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통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입니다. 동시에 고가 인수 의혹이 제기되는 이그니오가 트로이카 드라이브 밸류 체인의 핵심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승리로 당분간 신재생에너지 관련 사업 환경은 크게 악화했습니다. 시작 단계에 있는 트로이카 드라이브가 글로벌 대외 환경 변화를 버텨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주주들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던 원아시아파트너스를 통한 투자 등에 대한 해명도 필요합니다.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주주 이익 극대화에 나선다는 방침입니다. 최근 5년간 지배구조 문제로 손실이 커졌다면서 전문 경영인을 내세워 효율 경영에 나설 것임을 밝혔습니다. PEF는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통해 회사 가치를 높입니다. 실제로 MBK파트너스는 국내외 다수 기업을 인수, 회사 가치를 높인 후 매각에 성공하면서 큰돈을 벌었습니다.하지만 영풍과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차입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자뿐만 아니라 원금도 고려아연의 이익을 통해 지급됩니다. 고려아연이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지 못한다면 대규모 차입금의 부담 때문에 회사가 망가질 수 있습니다. 과거 MBK파트너스가 인수했던 케이블업체 딜라이브(옛 C&M)도 해마다 수천억 원의 돈을 벌었지만, MBK파트너스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해 파산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또 영풍과 MBK파트너스가 내놓은 아연 공동 구매 등도 ‘바잉파워(구매력)’을 높일 수 있다고 했으나, 최근 아연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고려아연에 짐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석포제련소에서 아연을 생산한 후 발생하는 잔재물을 고려아연에서 정제해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폐기물 처리 비용이 더 들어간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고려아연 실적 감소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반박도 제기됩니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지난해 11월 19일 오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서덜랜드 ‘부파(BUPA) 은퇴자 마을’ 아파트 안. 수영장을 지나 공용 거실에 들어서자 70, 80대 입주자 11명이 골대가 그려진 매트 위에서 공 굴리기 게임을 하고 있었다. 돌아가며 공을 굴리던 이들은 공이 골대 가까이 갈 때마다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공무원으로 일하다 20년 전 은퇴한 제프 듀발 씨(77)도 부인과 함께 4년 전 이곳으로 이사 왔다. 집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건 물론이고 사교 행사에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이곳에서의 삶이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이날도 수중 에어로빅, 공예 수업, 카드 게임 등 입주자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가 쉴 새 없이 열렸다. 매달 7000호주달러(약 640만 원)씩 나오는 퇴직연금이 있어 750호주달러(약 68만 원)의 관리비도 비교적 저렴하다고 느낀다. 그는 “생활비를 내고 남는 돈은 여행이나 파티, 가족을 위한 선물에 쓴다. 혜택이 좋은 연금 덕분”이라며 웃었다.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고 있는 한국에선 찾기 어려운 모습이다. 한국은 지난해 12월 국민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일본(10년), 독일(36년), 프랑스(39년)와는 달리 고령사회가 된 지 불과 7년 만에 초고령사회를 맞이한 것.하지만 ‘실버 시프트’ 준비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시니어를 중심에 놓고 연금, 정년, 의료, 교육 등 모든 정책과 산업의 큰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하는 시점이지만 개혁의 움직임은 더딘 것이다. 건강과 소득을 갖춘 노년층을 일컫는 ‘영 올드(Young Old)’가 소비와 생산의 주체가 되고 있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 노년층은 노후 버팀목의 부재 속에 소비를 줄이고 있다. 퇴직연금 연평균 수익률은 최근 10년 기준 2%대에 불과하고, 취업 시장에 뛰어든 노인 절반은 100만 원 아래의 월급을 받는 현실 때문이다.한국 경제성장률이 1%대로 추락하며 저성장이 고착화될 위기 상황에 준비 없이 맞이한 초고령화가 전체 경제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2차 베이비붐 세대(1964∼1974년생)의 은퇴에 따라 경제성장률이 2024∼2034년 연 0.38%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정했다.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연금부터 의료, 산업 현장까지 모든 사회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될수록 소비가 위축돼 경제에 전방위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새로운 인구구조를 바탕으로 잠재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투자를 아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영올드(Young Old)젊고 건강한 60, 70대 고령자. 이전 세대보다 평균 학력이 높고 구매력을 갖춰 은퇴 이후에도 여행과 취미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특징이 있다.[실버 시프트, 영올드가 온다] 〈1〉 초고령사회, 갈길 먼 韓 실버시프트호주, 월급 12% 붓는 퇴직연금 기본… 없을땐 月최대 209만원 노령연금英은 기초-퇴직-개인 3중 연금… 노년층 ‘영올드’ 소비-생산 주체 부상韓, 준비없이 초고령사회 진입… 취업제도 개선-연금개혁 서둘러야‘부파(BUPA) 은퇴자 마을’의 여유로운 노인들 뒤에는 호주의 퇴직연금 ‘슈퍼애뉴에이션(슈퍼)’이 자리한다. 1992년 도입된 슈퍼는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월 450호주달러(약 41만 원) 이상을 버는 근로자라면 의무 가입해야 하는 ‘국민 퇴직연금’이다. 의무납입액(월 급여의 11.5%)은 전액 고용주가 내지만 높은 수익률 덕에 근로자들이 여윳돈을 추가로 붓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남편의 슈퍼로 생활하는 닷 비숍 씨(81)는 “남편이 일할 때는 항상 내게 ‘생활비를 얼마나 썼냐’고 묻곤 했지만 은퇴 후에는 돈 걱정이 사라졌다. 2년에 한 번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새로운 걸 배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을 오래 쉬어 슈퍼에 미처 많은 돈을 붓지 못한 호주인들에게는 세금으로 지급되는 노령연금이 노후 버팀목이 되어 준다. 67세부터 받을 수 있는 노령연금은 소득과 자산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되는데 1인 기준으로 한 달에 2300호주달러(약 209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연금-일자리에 선진국은 여유로운데… ‘노후 버팀목’ 없는 한국지난해 말 영국 헨리온템스의 개인 회원제 클럽 필리스 코트에서 만난 캐런 그리브 씨(70)도 “우리 지역 노인들은 운동이나 취미, 동호회 활동에 열심이다. 삶을 즐길 수 있는 돈이 있기 때문”이라며 만족감을 표했다. 영국 국민 누구나 가입하는 기초연금 외에도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이 은퇴 생활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66세 이상이 받는 기초연금은 한 달에 평균 815파운드(약 145만 원)까지 지급되고 있으며, 퇴직연금 수익률도 10년 평균 연 7% 정도다. 이렇듯 영국, 호주 등 선진국에선 탄탄한 다층 연금, 재취업 시장 등을 바탕으로 노년층이 ‘영 올드(Young Old·젊은 노인)’로서 소비와 생산의 주체로 부상 중이다. 반면 준비 없이 초고령사회에 도달한 한국의 상황은 딴판이다. 고령사회가 된 지 불과 7년 만에 국민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지만 연금, 산업 구조를 변화된 사회 구조에 맞게 전환하는 ‘실버 시프트’엔 속도가 나질 않고 있다.준비 없는 초고령화 탓에 한국의 고령층은 지갑을 닫고 있다. 은퇴 후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연금과 부족한 일자리에 소비부터 줄이는 것이다. 퇴직연금의 10년(2013∼2022년 기준) 연평균 수익률이 미국은 7.79%, 호주가 6.72%, 일본은 4.10%인 반면 한국(2014∼2023년 기준)은 2.07%에 불과하다. 전체 적립금의 87.2%가 여전히 예금 등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쏠린 결과다.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점도 한국의 약점으로 꼽힌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고령층 자산의 83.66%는 부동산이었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전모 씨(65)도 대출을 끌어다 ‘집 한 채’에 자산을 몰아뒀다가 은퇴 후 자금난에 처했다. 전 씨는 “집을 팔고 싶지만 가격을 1억 원 내려도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 은퇴 후 고정 수입이 100만 원대로 줄어 대출 이자 부담이 상당히 크다”고 했다. 고령층 일자리 시장도 열악하다. 한국의 일하는 노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은 37.3%에 달하지만, 이 중 절반 가까운 노인들이 월 100만 원도 못 벌고 있다.● 활력 떨어지는 한국 경제도 조로화 기로초고령화는 한국 경제에도 최대 위협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경제의 허리를 담당하는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중이 2025년부터 70%를 밑돌기 시작해 2050년에는 51.9%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는 2050년 40.1%까지 치솟을 것으로 점쳐진다. 이는 노동생산성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OECD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4.4달러로, OECD 회원국 38개국 중 33위에 머물렀다. 한국은행은 2차 베이비붐 세대(1964∼1974년생)가 은퇴할 경우 2024∼2034년 11년에 걸쳐 연간 경제성장률이 0.38%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진단하기도 했다. 결국 2차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에 발맞춰 제도 개선 논의가 본격화돼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차 베이비붐 세대의 경우 근로 의지가 강하고 교육 수준 및 디지털 친화력이 높은 만큼 이들의 특성을 반영한 취업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은에서는 강력한 제도 변화로 이들의 고용률이 증가할 경우 경제성장률 하락폭이 최대 0.22%포인트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기금 고갈을 막기 위한 연금 개혁을 빠르게 추진하는 한편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 노년 일자리 확보와 같은 정책 지원이 급선무라는 진단도 나온다. 로허르 플라녜 네덜란드 사회고용부 연금 프로그램 디렉터는 “연금 개혁을 준비하기 시작한 이후 실제로 유의미한 성과로 이어지기까진 최소 10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조언했다.특별취재팀▽팀장 장윤정 경제부 차장 yunjung@donga.com▽호주=송혜미, 네덜란드·독일=강우석, 일본=신무경, 영국=김수연 기자뉴욕=임우선 특파원, 파리=조은아 특파원서울=전주영 이동훈 조응형 신아형 기자}
지난해 11월 19일 오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서덜랜드 ‘부파(BUPA) 은퇴자 마을’ 아파트 안. 수영장을 지나 공용 거실에 들어서자 70, 80대 입주자 11명이 골대가 그려진 매트 위에서 공 굴리기 게임을 하고 있었다. 돌아가며 공을 굴리던 이들은 공이 골대 가까이 갈 때마다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공무원으로 일하다 20년 전 은퇴한 제프 듀발 씨(77)도 부인과 함께 4년 전 이곳으로 이사 왔다. 집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건 물론이고 사교 행사에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이곳에서의 삶이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이날도 수중 에어로빅, 공예 수업, 카드 게임 등 입주자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가 쉴 새 없이 열렸다. 매달 7000호주달러(약 640만 원)씩 나오는 퇴직연금이 있어 750호주달러(약 68만 원)의 관리비도 비교적 저렴하다고 느낀다. 그는 “생활비를 내고 남는 돈은 여행이나 파티, 가족을 위한 선물에 쓴다. 혜택이 좋은 연금 덕분”이라며 웃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고 있는 한국에선 찾기 어려운 모습이다. 한국은 지난해 12월 국민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일본(10년), 독일(36년), 프랑스(39년)와는 달리 고령사회가 된 지 불과 7년 만에 초고령사회를 맞이한 것. 하지만 ‘실버 시프트’ 준비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시니어를 중심에 놓고 연금, 정년, 의료, 교육 등 모든 정책과 산업의 큰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하는 시점이지만 개혁의 움직임은 더딘 것이다. 건강과 소득을 갖춘 노년층을 일컫는 ‘영 올드(Young Old)’가 소비와 생산의 주체가 되고 있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 노년층은 노후 버팀목의 부재 속에 소비를 줄이고 있다. 퇴직연금 연평균 수익률은 최근 10년 기준 2%대에 불과하고, 취업 시장에 뛰어든 노인 절반은 100만 원 아래의 월급을 받는 현실 때문이다. 한국 경제성장률이 1%대로 추락하며 저성장이 고착화될 위기 상황에 준비 없이 맞이한 초고령화가 전체 경제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2차 베이비붐 세대(1964∼1974년생)의 은퇴에 따라 경제성장률이 2024∼2034년 연 0.38%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정했다. 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연금부터 의료, 산업 현장까지 모든 사회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될수록 소비가 위축돼 경제에 전방위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새로운 인구구조를 바탕으로 잠재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투자를 아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영올드(Young Old)젊고 건강한 60, 70대 고령자. 이전 세대보다 평균 학력이 높고 구매력을 갖춰 은퇴 이후에도 여행과 취미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특징이 있다.특별취재팀▽팀장 장윤정 경제부 차장 yunjung@donga.com▽호주=송혜미, 네덜란드·독일=강우석, 일본=신무경, 영국=김수연 기자뉴욕=임우선 특파원, 파리=조은아 특파원서울=전주영 이동훈 조응형 신아형 기자}
“연금 개혁은 보험료 부담이 줄어들면 서비스(수급액 등)도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한국 정부도 국민연금을 개혁하려면 국민에게 이 시스템을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부터 더 해야 할 것입니다.” 세계적 노동경제학자 세이케 아쓰시(清家篤) 일본적십사자 총재 겸 일본 고령화대책위원장(전 게이오대 총장·사진)은 지난해 말 일본적십자사 본사에서 동아일보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앞서 일본의 공적연금인 후생연금도 우리 국민연금과 유사한 진통을 겪었다. 1990년대 장기침체 여파로 2002년 후생연금은 적자로 돌아섰다. 당시 2100년까지 연금 지급액 740조 엔이 필요한데, 480조 엔이 부족하다는 추정치가 나와 연금 고갈 우려가 커졌다. 우리와 다른 점이라면 이를 계기로 2004년 이른바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이 이어졌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보험료율을 13년에 걸쳐 조금씩 올리고, 공적연금 수급 개시 나이 역시 단계적으로 60세에서 65세로 인상했다. 또 이에 발맞춰 노사 합의로 65세까지 계속 고용을 실시하도록 법률을 개정했다. 획일적 정년 연장 추진이 아니라 기업에 60세 이상 고령자에 대한 정년 폐지, 정년 연장, 정년 후 재고용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세이케 총재는 “정부의 연금 개혁에 대한 명확한 모델 제시와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설득, 연금 지급 개시 나이 인상에 대응한 고용 연장 합의 등이 연금 개혁 성공의 배경”이라고 말했다. 노인 고용 확대 정책을 둘러싼 청년층의 반발이 없었냐고 묻자 “일본은 전반적으로 일손이 부족해 젊은이들 취직이 어렵지 않아 저항이 크지 않았다”라면서도 “노인 일자리 확대로 국민연금 납부자가 늘면 젊은이들은 상대적으로 그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라며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비인기 정책인 연금 개혁을 위해서는 정치권의 뚝심이 필요하다고도 제언했다. 그는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 세대에 대한 부담 전가는 어떻게라도 막아야 한다는 대명제에 합의가 이뤄져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연금 개혁은 정치인 입장에서는 비인기 주제”라면서 “한국에서도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처럼 용기 있는 결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여론의 반발이 거셌으나, 10여 년이 지난 현재 연금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해당 정책 추진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된다”라고 귀띔했다.특별취재팀▽팀장 장윤정 경제부 차장 yunjung@donga.com▽호주=송혜미, 네덜란드·독일=강우석, 일본=신무경, 영국=김수연 기자뉴욕=임우선 특파원, 파리=조은아 특파원서울=전주영 이동훈 조응형 신아형 기자}
《비트코인, 트럼프 취임후 어디로‘크립토(가상자산) 대통령’을 자처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 가격이 얼마나 오를지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지난해 미국 대선 이후 친(親)가상자산 정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비트코인 가격은 급등했다. 지난해 1년 동안 약 120% 상승해 미국 증시나 금 등의 연간 수익률을 크게 웃돌았다. 일각에선 친가상자산 정책들이 온전히 실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가상자산 기업과 투자자에게 적합한 환경을 제공하고, 미국을 지구의 가상자산 수도로 만들겠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인 지난해 7월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콘퍼런스 2024’에 참석해 던진 말이다. 2019년 대통령 재임 당시만 해도 X(옛 트위터)에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은 화폐가 아니다”라고 남겼던 트럼프는 이번 대선을 치르면서 180도 입장을 바꿔 ‘크립토 대통령’을 자처하고 나섰다.이달 20일 트럼프의 공식 취임을 앞두고 이제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관심은 과연 비트코인 가격이 올해도 계속해서 오를 것이냐에 쏠려 있다. 지난해 비트코인은 ‘꿈의 가격’이라고 불리는 10만 달러(약 1억4600만 원) 고지에 처음으로 진입한 바 있다.시장에서는 아직까지 비트코인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우세한 분위기다. 트럼프의 ‘친(親)가상자산 정책’이 충실히 현실화되면 비트코인이 경제 및 지정학적 불확실성 속에서 ‘디지털 금(金)’으로 더욱 각광받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다만 일각에서는 정책상 예상되는 호재가 이미 비트코인 가격에 반영됐다며 신중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의 안정성에 심각한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는 양자컴퓨팅 기술도 리스크 요인으로 꼽힌다.● 美 현물 ETF 상장으로 제도권 진입9일 가상자산 가격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30분 현재 비트코인 가격은 24시간 전보다 1.78% 하락한 9만5219달러(약 1억3875만 원)에 거래됐다. 소폭의 등락은 있었으나 작년 12월부터 10만 달러 안팎을 오가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비트코인 가격은 약 120% 상승해 금(26.7%), 나스닥(25.6%), S&P500(24.9%) 등의 연간 수익률을 크게 상회했다. 앞서 비트코인은 2023년 한 해 동안에도 약 156%의 상승률을 기록한 바 있다. 2022년의 ‘크립토 윈터’(가상자산 장기 하락 추세)를 끝내고 상승세가 이어지는 양상이다. 지난해 ‘비트코인 랠리’가 지속된 가장 큰 이유는 투자 통로가 다변화되며 금융자산의 위상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작년 1월 10일 자산운용사 11곳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한 거래 개시를 승인했다. 전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미국에서 현물 ETF가 승인된 것은 남다른 의미를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김현범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차장은 “막대한 투자금을 보유한 기관투자가들이 제도권 안에서 가상자산에 안전하고 자유롭게 투자할 통로가 열린 것”이라며 “사실상 가상자산이 제도권 투자 상품으로 인정받은 사례라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물 ETF가 상장되면서 개인 투자자들도 일반 주식 계좌로 비트코인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비트코인에 투자하려면 별도의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계좌를 개설해 직접 매수해야 했는데, 이제는 ETF를 통해 비트코인을 간접적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현물 ETF 도입 이후 투자금이 대거 유입됨에 따라 가상자산 데이터 플랫폼 비트보에 따르면, 이달 6일 기준 미국 증시에 상장된 12개의 비트코인 현물 ETF의 운용자산 규모는 총 1155억 달러(약 168조 원)에 이른다. 미 SEC가 ETF 상장을 승인한 지 약 1년 만에 미국 금 ETF 운용 자산과 맞먹는 수준으로 덩치가 커진 것이다.● 트럼프 친(親)가상자산 정책 기대트럼프 당선인이 가상자산에 힘을 실어줄 것이란 기대 역시 비트코인의 상승을 부추겼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 가상자산 시장 활성화를 위한 공약을 대거 내걸었다. 구체적으로는 △전략적 비트코인 비축 △비트코인 채굴 산업 지원 △조 바이든 현 정부의 가상자산 규제 철폐 △대통령 직속 가상자산 자문위원회 신설 등이다. 그는 또 ‘가상자산 저승사자’로 불려 온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을 취임 첫날 해임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차기 위원장으로는 가상자산에 호의적이라고 평가받는 폴 앳킨스 전 SEC 위원을 지명했다. 이런 기조로 인해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가상자산 규제가 완화될 것이란 기대가 커진 상황이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앳킨스 전 위원은 가상자산이 미국 경제에 중요하다는 입장이며 (이에 대한) 과도한 규제에 반대하는 인물”이라며 “오랫동안 제도권의 가상자산 투자에 걸림돌로 작용해 왔던 법적 리스크가 대폭 해소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공화당 의원들이 주도해 온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지난해 5월 미 하원을 통과한 ‘21세기를 위한 금융혁신 및 기술법안(FIT21)’은 가상자산 규제 권한을 SEC 대신 시장 친화적인 상품거래위원회(CFTC)로 넘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같은 해 7월에는 신시아 루미스 공화당 상원의원이 비트코인 비축 계획을 담은 ‘비트코인 2024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해당 법안에는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비트코인 매입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들이 담겨 있다. 매년 최대 20만 개의 비트코인을 사들여 최대 100만 개까지 매입하고, 최소 20년간 보유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연방준비은행들이 매년 순이익의 일정 금액을 비트코인 매입에 활용하도록 요구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에 대해 “정부가 보유한 비트코인을 팔지 않고 영구적 국가 자산으로 만들 것”이란 계획까지 밝힌 바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바이든 정부에서는 디지털 자산 시장에 대한 규제가 상당히 불명확한데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 (이런 점들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며 “미국 의회의 상·하원을 공화당이 모두 장악했기 때문에 공화당 의원들이 발의한 관련 법안들의 통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전망했다. 홍성욱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트럼프가 허락하는 유일한 달러 헤지(위험 상쇄) 수단이 비트코인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비트코인을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보유하자는 논의 역시 이와 일맥상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비트코인 20만 달러 갈 것”이렇다 보니 현재까지는 비트코인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에 좀 더 힘이 실리고 있다. 우선 연기금, 공제회 등 기관투자가들이 비트코인 현물 ETF에 더 공격적으로 투자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박우열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기관투자가들도 가상자산에 대한 간접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글로벌 투자은행(IB), 운용사, 연기금 등에서 가상자산에 대한 입장이 전향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심지어 비트코인 가격이 연내 현재의 두 배 수준까지 치솟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영국 IB 스탠다드차타드는 올해 말까지 비트코인 가격이 20만 달러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했다. 제프 켄드릭 스탠다드차타드은행 디지털자산 연구책임자는 “작년 한 해 동안 기관투자가들은 마이크로스트래티지와 ETF 등을 통해 68만3000개의 비트코인을 매수했다”며 “금년에도 비트코인으로의 기관 자금 유입이 작년 속도 이상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IB인 번스타인도 6일(현지 시간) 고객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비트코인 가격의 추가 상승 여력이 충분하다고 진단했다. 번스타인은 “비트코인이 주류 금융 시스템에 통합되는 ‘인피니티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며 “기업들의 비트코인 채택량이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며, 올해 말까지 비트코인 가격은 20만 달러를 돌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확실성 커 신중론 제기도그렇다고 비트코인에 대해 장밋빛 전망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 때 공약으로 내세운 가상자산 정책들이 온전히 이행되지 않을 수 있다. 트럼프는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때도 파격적인 공약들을 내걸었지만 이행률이 신통치 않았던 바 있다. 미국 팩트체크 전문기관 폴리티팩트에 따르면 트럼프는 당시 총 102개의 공약을 제시했는데, 실제 이행된 공약과 파기된 공약은 각각 24개, 55개였다. 공약 이행률로 따지면 23.5%로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 행정부(47%) 때에 비해 크게 낮다. 이런 점 때문에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한 기대감 못지않게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잡음이 나오는 것도 부담 요인이다. 지난해 12월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비트코인을 전략적으로 보유하려는 차기 정부의 행보를 두고 “관여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파월 의장의 발언 직후 비트코인 가격은 한때 10만 달러 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양자컴퓨팅 기술을 활용한 비트코인 암호 해독 가능성도 리스크 요인으로 꼽힌다. 미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는 2022년 양자컴퓨터를 통한 비트코인 해킹으로 금융시장에서 3조 달러(약 4375조20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심각한 경기 침체가 유발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아서 허먼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누군가 양자컴퓨터를 통한 해킹 능력을 갖추고 가상자산을 표적으로 삼는다면 시한폭탄이 터질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양자컴퓨터가 비트코인에 직접적인 위협 수준으로까지 도달하려면 최소 10년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구글이 자체 개발한 양자 칩 ‘윌로’를 발표한 날 비트코인 가격은 4% 하락했다. 익명을 요청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평범한 일반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의 변동성을 감내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24시간 거래되는 데다 변수, 불확실성도 많고 가상자산의 탈중앙화나 실물자산연계(RWA) 등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도 많다 보니 투자를 추천하기는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가상자산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알트코인(비트코인 외 암호화폐)도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더리움이나 리플 등 일부 알트코인은 비트코인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부 ‘묻지 마 상승’을 보이는 알트코인에 잘못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볼 수 있다면서 신중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가상자산 가격 정보 사이트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리플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승리 이후 가장 많이 오른 가상자산 중 하나다. 미국 대선 전인 지난해 11월 초까지 개당 0.5달러에 불과했던 리플 가격은 지난해 12월 초까지 최대 2.7달러로 치솟았다. 한 달 새 5배 이상 뛰면서 시가총액도 비트코인, 이더리움에 이어 3위까지 올랐다. 9일 기준으로는 2.3달러로 떨어지면서 시총 순위도 테더에 밀린 4위로 내려왔다. 리플은 저렴하게 국제 송금을 처리하기 위한 블록체인 기반 결제 네트워크를 표방하고 있는데, 최근의 급등에는 트럼프 정부의 대표적인 수혜 자산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했다. 리플의 운영 업체인 리플랩스가 2020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소송을 당한 이후 게리 겐슬러 미 SEC 위원장과 갈등을 빚어왔는데,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즉시 겐슬러 위원장을 해임할 것이라고 밝혀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겐슬러 위원장은 트럼프 당선 후 지난해 11월 21일(현지 시간) 성명을 내놓고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식 날 사임하겠다고 먼저 발표했다. 가상자산 전문가들은 겐슬러 위원장의 사임으로 미 SEC와의 소송이 끝날 경우 리플의 가격이 추가로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에 이어 리플의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출시될 경우 투자금이 몰릴 수도 있다. 다만 단시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 만큼 대규모 가격 조정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가상자산 시총 2위인 이더리움에도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더리움은 중앙은행 같은 기관 없이 이용자끼리 금융 활동이 가능한 ‘탈중앙화’에 초점을 맞춘 가상자산. 이에 트럼프 정부에서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하는 결제 시스템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더리움의 공동 창업자인 비탈리크 부테린은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이더리움에 대한 투자도 몰리며 지난해 12월 한 달간 이더리움 현물 ETF에 21억 달러(약 3조996억 원)가 순유입되면서 월간 최고 유입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머시 피터슨 가상자산 분석가는 X(옛 트위터)를 통해 “올 1월부터 5월까지의 이더리움 상승률이 지난해 6월부터 12월의 상승률보다 75% 높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외에도 다수의 알트코인이 급등하면서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알트코인의 무분별한 상승세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닷컴버블 시기에 닷컴 관련 모든 자산이 올랐지만, 결국 살아남은 것은 소수에 불과했다”며 “가상자산 역시 비슷한 과정을 밟을 수 있다”고 말했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
양자컴퓨터 출시에 대한 기대감으로 수십 배 이상 급등했던 관련주들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말 한마디에 폭락했다. ‘CES 2025’가 열리고 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방문 중인 젠슨 황은 월가 분석가들과의 간담회에서 양자컴퓨터 발전에 대한 질문을 받고 유용한 양자컴퓨터가 나오기까지 20년은 걸린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이 여파로 8일(현지 시간) 뉴욕 증시에서 양자컴퓨터 대표주인 아이온큐는 전일 대비 39.0% 하락했고 리게티컴퓨팅(45.1%), 퀀텀컴퓨팅(43.34%) 등도 일제히 급락했다. 양자컴퓨터는 양자역학을 이용한 ‘꿈의 컴퓨터’로 슈퍼컴퓨터보다 최소 1억 배 이상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빠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양자컴퓨터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아이온큐 등 관련 종목들의 주가가 급격한 오름세를 그렸었다. 8일 폭락으로 국내 투자자들도 평가 손실을 보게 됐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7일 기준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보유한 아이온큐의 보유 잔액은 30억9016만 달러(약 4조5168억 원)에 달했다. 이는 당시 아이온큐 시총 기준 30%에 달한다. 한편 아이온큐의 주가 급락으로 영국 자산운용사 레버리지셰어즈가 운용하는 ‘레버리지셰어즈3X롱아이온큐(Leverage Shares 3X Long IONQ)’ 상장지수상품(ETP)이 이날 상장 폐지됐다. 해당 ETP는 아이온큐의 주가를 3배 추종하는 금융 상품이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삼성전자가 실적 부진을 겪으면서 목표주가가 6만 원대까지 떨어졌다. 9일 iM증권은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7만1000원에서 6만8000원으로 내려 잡았다. 국내 증권사가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6만 원대로 예상한 것은 2023년 2월 이후 1년 11개월 만에 처음이다. iM증권은 삼성전자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실적 부진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목표 주가를 낮췄다. iM증권은 올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전망치를 지난해보다 36%가량 낮은 21조 원으로 예상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전망치는 33조1000억 원이다.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송명섭 iM증권 연구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일각에서 올해 3분기(7~9월)부터 반도체 업황이 개선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는 지나치게 빠르다”며 “이제 막 반도체 업황 불황이 시작됐는데, 역사적으로 6개월 만에 업황이 개선된 적이 없다. 반등을 위해서 최소한 1년 6개월은 걸렸다”고 했다. 전날에 이어 장 초반 상승세를 이어가던 삼성전자의 주가는 내림세를 보인다. 이날 오후 2시 18분 기준 삼성전자의 주가는 전일 대비 1.22% 내린 5만6600원에 거래되고 있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8일 삼성전자가 발표한 지난해 4분기(10∼12월) 잠정 실적에는 3분기(7∼9월)에 이어 또다시 ‘반도체 겨울’ 그림자가 드리웠다. 중국 업체들이 범용 D램을 공격적으로 생산하는 가운데 고대역폭메모리(HBM)로 대표되는 인공지능(AI) 특수를 놓치면서 업계에선 올 상반기(1∼6월)까지 메모리 시장 고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D램 시장 침체 직격탄, 반도체 영업이익 1조 줄어이날 잠정 실적 발표에서 사업부별 세부 실적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증권가는 삼성전자가 반도체(DS)부문에서 4분기 2조 원대 후반의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추정했다. 3분기(3조8600억 원) 대비 1조 원가량 줄어든 숫자다. 삼성전자 DS부문은 앞서 2023년 반도체 시장 다운사이클(침체기)을 맞아 14조8800억 원의 연간 적자를 냈다. 이후 지난해 1분기(1∼3월) 1조9100억 원, 2분기(4∼6월) 6조4500억 원의 영업이익을 회복하며 ‘반도체 봄’을 기대했으나 3분기 이후 다시 하락세로 접어들었다.반도체 실적 부진의 가장 큰 배경은 삼성전자의 주력인 정보기술(IT) 기기용 D램 시장의 침체다. 연말을 맞아 회복을 기대했던 PC, 스마트폰 시장이 계속 얼어붙으면서 주요 고객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메모리 재고를 줄이고 있는 추세다. 여기에 중국 메모리 제조사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와 푸젠진화(JHICC) 등이 시중 절반 가격으로 범용 D램 물량을 풀어 시장이 공급과잉으로 접어들었다. 지난해 12월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4분기 D램 가격이 3∼8% 하락한 데 이어 올 1분기에도 8∼13%가량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AI 돌풍을 타고 상승세인 HBM 시장을 놓친 것도 주요 요인이다. 사실상 5세대 HBM인 HBM3E 제품을 독점 공급하고 있는 SK하이닉스는 4분기 영업이익 8조 원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글로벌 D램 3위 기업인 마이크론도 지난해 2월 HBM3E 엔비디아 공급을 공식화했다. 삼성전자는 설계 변경한 HBM3E 12단 제품을 올 상반기, 6세대 HBM4 제품을 올 하반기(7∼12월) 양산을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 이에 더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사업부와 반도체 설계를 맡는 시스템LSI사업부의 적자 폭도 전 분기 대비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율 및 고객사 확보에 난항을 겪으면서 두 사업부를 합쳐 4분기 2조 원이 넘는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시장 컨센서스와 차이가 크게 벌어진 데는 파운드리, 시스템LSI의 부진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닥 찍었나’ 삼성전자 주가는 상승 디바이스경험(DX)부문도 세부 실적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계절적 비수기 영향으로 약세를 보였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증권가에 따르면 모바일경험(MX)·네트워크사업부에서 2조 원대 초반, 디스플레이 1조 원 안팎, TV·가전 3000억 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냈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연간 매출은 잠정 300조800억 원으로 2년 만에 300조 원대를 회복했다. 연간 영업이익은 32조7300억 원을 기록했다. 기대치를 밑도는 실적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주가는 오히려 오름세를 보였다. 이날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 주가는 전일 대비 3.43% 오른 5만73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악재를 다 확인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올해 하반기부터는 반도체 업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수림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파운드리는 상반기까지 적자 폭을 크게 줄이기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하반기 D램 가격이 반등할 것으로 전망해 1분기를 기점으로 실적 바닥과 업황 반전의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곽도영 기자 now@donga.com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지난해 11월에도 우리나라 경상수지가 흑자를 달성하면서 7개월 연속 흑자 기조를 이어갔다. 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11월 국제수지(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경상수지는 93억 달러(약 13조5300억 원) 흑자로 집계됐다. 지난해 5월(89억2000만 달러) 이후 7개월 연속 흑자 행진이다. 수출(571억 달러)이 1년 전보다 1.2% 늘어났고, 수입(473억5000만 달러)이 4.4% 줄면서 상품수지에서 97억5000만 달러의 흑자를 냈다. 수출 품목별로는 반도체(29.8%)·정보통신기기(8.5%)·철강제품(0.8%)이 늘었고, 석유제품(―18.6%)·승용차(―14.1%)·기계류 및 정밀기기(―12.5%) 등은 줄었다. 지역별로 동남아(9.1%)에서 수출 호조를 보였으나 미국(―5.2%)·일본(―2.4%)·중국(―0.7%) 수출은 뒷걸음쳤다. 한은은 고사양 반도체의 수출 호조로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전망치인 9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과거와 같이 고환율로 인한 가격 경쟁력 강화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송재창 한은 금융통계부장은 “주요 수출 기업의 생산 시설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환율 상승으로 인한 수출 증가 효과는 과거보다 약화했다”며 “환율 변동보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무역 정책 등을 더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지난해 11월 수출 증가세 둔화에도 수입이 더 많이 감소하면서 경상수지 흑자를 달성했다. 12월에도 경상수지 흑자가 예상되면서 지난해 연간 흑자 폭이 한국은행의 목표치인 9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11월 국제수지(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경상수지는 93억 달러(약 13조5300억 원) 흑자로 집계됐다. 지난해 5월(89억2000만 달러)이후 7개월 연속 흑자 행진이다. 지난해 11월 흑자 규모는 전월(97억8000만 달러)보단 약 5억 달러 줄었지만, 1년 전(38억9000만 달러)보다는 3배 가까이 늘었다. 항목별로는 상품수지가 97억5000만 달러를 보이면서, 2023년 4월 이후 20개월 연속 흑자를 이어갔다. 흑자 규모도 지난해 10월(81억2000만 달러)과 비교해 16억 달러 이상 늘었다. 수출(571억 달러)이 1년 전보다 1.2% 늘어났지만, 수입(473억5000만달러)이 4.4% 줄어든 영향이 컸다. 수출 품목별로는 반도체(29.8%)·정보통신기기(8.5%)·철강제품(0.8%)이 늘어난 반면, 석유제품(―18.6%)·승용차(―14.1%)·기계류 및 정밀기기(―12.5%) 등은 줄었다. 지역별로 동남아(9.1%)로 수출이 호조를 보였으나 미국(―5.2%)·일본(―2.4%)·중국(―0.7%) 수출은 뒷걸음쳤다. 운송·여행 등의 항목으로 구성된 서비스수지는 20억9000만달러 적자로 집계됐다. 특히 여행수지가 7억6000만 달러 적자를 보였는데, 한은은 중국 국경절 연휴 효과 등이 사라진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2월 경상수지 규모는 11월보다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연간 경상수지 흑자 규모도 9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누적 흑자 규모는 835억4000만 달러다. 송재창 한은 금융통계부장은 “산업통상자원부의 통관 기준 12월 상품수지는 양호한 것으로 판단한다”며 “흑자 규모는 조사국 전망치인 900억 달러를 웃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한은은 고부가가치의 고사양 반도체 수요가 지속해서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면서 당분간 수출 증가세가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저가 반도체에 대해서는 중국 제품과의 경쟁이 치열해진 데다 과거 반도체 수출 증가에 따른 기저 효과 때문에 증가세는 둔화할 것으로 예상했다.한은은 고환율이 경상 수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하면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보편 관세 부과 등 정책 이슈는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송 부장은 “주요 수출기업의 생산 시설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환율 상승으로 인한 수출 증가 효과는 과거보다 약화했다”며 “국내 수출품의 경쟁력도 가격보다는 기술이나 품질, 브랜드 등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고 했다. 그는 “환율 변동보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이나 경기 변화, 주변국 등의 대응을 더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소비 절벽으로 인해 내수 부진이 심화할 조짐이 보이자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재차 낮춰 잡고 있다. 7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글로벌 IB 8곳(골드만삭스·노무라·바클리·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씨티·JP모건·HSBC·UBS)은 지난해 말 보고서를 통해 올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1.7%로 예상했다. 이는 한은이 지난해 11월 28일 제시한 전망치(1.9%)나 정부가 2일 내놓은 전망치(1.8%)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IB들은 지난해 9월(2.1%) 이후 매달 한국의 성장률을 줄줄이 낮추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경제성장률을 잠재성장률(2.0%) 이하인 1.8%까지 낮추더니 12월에는 1.7%까지 내렸다. JP모건은 IB 중 가장 낮은 성장률 전망치인 1.3%를 제시했는데, 한 달 새 무려 0.4%포인트나 낮춘 수치다. JP모건은 지난해 말 내놓은 보고서에서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인해 한국의 내수 불황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치 불안 여파로 소비 심리가 급격히 꺾이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88.4로, 11월보다 12.3포인트 떨어졌다. 이는 팬데믹 발생 시기인 2020년 3월(―18.3포인트) 이후 최대 하락 폭이다. CCSI가 100보다 작으면 소비자의 기대 심리가 비관적이라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공식 취임을 앞두고 수출 불안이 커진 상황에서 내수 부진까지 겹칠 경우 한국이 장기 불황에 접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내수 활성화를 위해 정부 예산 조기 집행이나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선 이번 달 열리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통화정책 방향 회의에서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현재 국내 상황을 고려할 때 현 기준금리(3.0%)는 높은 수준”이라며 “내수 활성화를 위해 한은이 기준금리를 2% 중반대까지 내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미국의 탄탄한 경제를 바탕으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원-달러 환율이 장중 한 때 1475원대까지 올랐다. 6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오후 3시 30분 종가 기준 전일 대비 1.3원(0.09%) 상승한 1469.7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1470.0원에 개장한 뒤 오전 9시 12분에는 1475.0원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이후 1470원대에서 등락을 거듭하다가 소폭 오름세로 마감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글로벌 강달러 영향으로 오전부터 상승세였다. 지난 3일(현지 시간) 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발표한 지난해 12월 미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시장 예상치(48.4)를 웃도는 49.3을 기록한 영향이 컸다. 달러인덱스는 지난 2일(현지시간)까지만 해도 108대 초반을 유지했지만, PMI 지수 발표 이후 109를 훌쩍 넘어섰다. 달러인덱스는 주요 6개국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수치로, 100 이상이면 강달러, 이하면 약달러를 의미한다. 외환 전문가들은 10일(현지시간) 발표되는 미국의 지난해 12월 고용 보고서에 따라 환율이 또 한번 요동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신규 고용이 예상보다 늘었을 경우 달러화 강세로 환율이 더 높아질(원화 가치 하락)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을 비롯해 연준 의원들의 발언도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도규상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삼정KPMG경제연구원 원장으로 선임됐다.3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도 전 위원장은 올해부터 삼정KPMG경제연구원장을 맡게 됐다. 도 신임 원장은 경제관료 출신으로 금융위 금융정책과장,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 대통령비서실 경제정책비서관, 금융위 부위원장 등을 거쳤다. 삼정KPMG경제연구원장에 관료 출신이 선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정KPMG 관계자는 “삼정KPMG경제연구원의 연구 수준과 위상을 높이기 위해 무게감 있는 인사 선임을 고려해 왔다”며 “도 원장은 국내 주요 경제 정책과 관련한 주요 보직을 거친 만큼 폭넓은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삼정KPMG경제연구원은 국내 경제와 경영, 산업 전반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공직자는 국민에게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국정의 중심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헌신해주기를 당부드린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25년 정부 시무식’에 모인 장차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최 권한대행은 이날 ‘국민’과 ‘공직자’를 각각 13번과 10번, ‘안정’을 5번 언급했다. 정부 내부에선 “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에 반발했던 대통령실 참모진과 일부 국무위원을 상대로 ‘국정 안정에 협력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최 권한대행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한국을 위해 최 권한대행을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고 발언하면서 최 권한대행 체제에 적극적으로 힘을 실었다. 최 권한대행의 헌재 재판관 임명에 반발해 사의를 표명했던 대통령실 참모들도 일단 사퇴하지 않고 잔류하기로 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재판관 임명을 둘러싼 갈등이 일단 봉합되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崔 “국정 안정 위한 여야 협력 절실” 최 권한대행은 이날 정부 시무식에서 “국정 안정과 현안 해결을 위해서는 여야 정치권을 비롯한 지도층의 단합과 협력이 절실하다”며 “정부도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현실적 해법을 내겠다”고 밝혔다. 최 권한대행은 20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다는 사실을 거론하면서 “외교·안보·통상 등 분야별 현안에 신속히 대응하며 미국 등 주요국과도 긴밀히 소통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최 권한대행은 경제당국을 향해서는 “해외 신용평가사, 투자자들과 긴밀히 소통해 대외 신인도를 최우선으로 관리하고,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이 확대되지 않도록 부처·기관 간 협업을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최 권한대행이 정부 시무식에서 공직자의 헌신을 강조한 건 대통령·총리 탄핵소추 여파로 술렁이는 공직사회의 기강을 다잡으려는 차원으로 보인다. 정부 시무식에는 지난해 12월 31일 국무회의에서 최 권한대행의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에 반발했던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비롯한 국무위원들도 ‘보이콧’하지 않고 참석했다. 최 권한대행은 이날 시무식을 마친 뒤 김 장관 등 국무위원 9명과 함께 전남 무안국제공항의 합동분향소로 이동하면서 정국 수습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총재도 이날 기자실을 찾아 “최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덕분에 ‘사령탑 줄탄핵’ 가능성은 줄었다”며 최 권한대행을 지지하고 나섰다. 한은 총재가 정치권의 공방이 거센 사안에 대해 의견을 피력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최 권한대행의 어려운 결정으로 이제 대외에 ‘우리 경제 운영이 정치 프로세스와 분리돼서 간다. 한국 경제는 튼튼하다’는 메시지를 내려고 하는데, 그럴 책임이 있는 국무위원들이 최 권한대행을 비난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고도 했다. 이 총재는 헌재 재판관 임명에 반발하는 대통령실 참모 등을 향해 “고민 좀 하고 이야기하면 좋겠다”며 “답답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참모진, 전원 잔류 가닥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 등 대통령실 참모들도 일단 사퇴하지 않고 대통령실 업무를 수행하기로 했다. 대통령에 이어 총리까지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직무가 정지된 상황에서 대통령실 참모들까지 직을 던지면 국정이 극심한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실 참모가 사직하면 대통령실 기능이 마비될 것이 분명하다. 야당에만 빌미를 줄 수 있다”고 했다. 정 비서실장은 이날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자신의 사표가 반려된 과정을 먼저 상세히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비서실장은 수석들에게 “최 권한대행이 세 차례 정도 다시 전화해 ‘오전 결정이 잘못됐다, 미안하다’며 사표 반려를 설득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고위 참모 대부분도 정 비서실장을 향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며 사의를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고도예 기자 yea@donga.com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공직자는 국민에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국정의 중심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헌신해주기를 당부드린다.”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25년 정부 시무식’에 모인 장·차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최 권한대행은 이날 ‘국민’과 ‘공직자’를 각각 13번과 10번, ‘안정’을 5번 언급했다. 정부 내부에선 “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에 반발했던 대통령실 참모진과 일부 국무위원을 상대로 ‘국정 안정에 협력해달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최 대행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한국을 위해 최 대행을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고 발언하면서 최 권한 대행 체제에 적극적으로 힘을 실었다. 최 권한대행의 헌재 재판관 임명에 반발해 사의를 표명했던 대통령실 참모들도 일단 사퇴하지 않고 잔류하기로 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재판관 임명을 둘러싼 갈등이 일단 봉합되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崔 “국정 안정 위한 여야 협력 절실”최 권한대행은 이날 정부 시무식에서 “국정 안정과 현안 해결을 위해서는 여·야 정치권을 비롯한 지도층의 단합과 협력이 절실하다”며 “정부도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현실적 해법을 내겠다”고 밝혔다. 최 권한대행은 20일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다는 사실을 거론하면서 “외교·안보·통상 등 분야별 현안에 신속히 대응하며 미국 등 주요국과도 긴밀히 소통해 나가겠다”고 밝혔다.최 권한대행은 경제당국을 향해서는 “해외 신용평가사, 투자자들과 긴밀히 소통해 대외 신인도를 최우선으로 관리하고,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이 확대되지 않도록 부처·기관 간 협업을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최 권한대행이 정부 시무식에서 공직자의 헌신을 강조한 건 대통령·총리 탄핵소추 여파로 술렁이는 공직사회의 기강을 다잡으려는 차원으로 보인다. 정부 시무식에는 지난해 12월 31일 국무회의에서 최 권한대행의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에 반발했던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비롯한 국무위원들도 ‘보이콧’하지 않고 참석했다. 최 권한대행은 이날 시무식을 마친 뒤 김 장관 등 9명의 국무위원들과 함께 전남 무안 국제공항의 합동분향소로 이동하면서 정국 수습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이날 기자실을 찾아 “최 대행의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덕분에 ‘사령탑 줄탄핵’ 가능성은 줄었다”며 최 대행을 지지하고 나섰다. 한은 총재가 정치권의 공방이 거센 사안에 대해 의견을 피력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최 권한대행의 어려운 결정으로 이제 대외에 ‘우리 경제 운영이 정치 프로세스와 분리돼서 간다. 한국 경제는 튼튼하다’는 메시지를 내려고 하는데, 그럴 책임이 있는 국무위원들이 최 권한대행을 비난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고도 했다.● 대통령실 참모진, 전원 잔류 가닥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등 대통령실 참모들도 일단 사퇴하지 않고 대통령실 업무를 수행하기로 했다. 대통령에 이어 총리까지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직무가 정지된 상황에서 대통령실 참모들까지 직을 던지면 국정이 극심한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실 참모가 사직하면 대통령실 기능이 마비될 것이 분명하다. 야당에만 빌미를 줄 수 있다”고 했다.정 비서실장은 이날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자신의 사표가 반려된 과정을 먼저 상세히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비서실장은 수석들에게 “최 권한대행이 세 차례 정도 다시 전화를 해 ‘오전 결정이 잘못됐다, 미안하다’며 사표 반려를 설득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고위 참모 대부분도 정 비서실장을 향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며 사의를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고도예 기자 yea@donga.com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