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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혁신센터(창경센터)는 지역 사회의 기술 창업을 촉진하기 위해 설립된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기관이다. 세종특별자치시 세종창경센터는 2015년 공식 출범한 뒤 올해 만으로 10년째를 맞고 있다. 오득창 센터장(사진)에게 세종창경센터의 성과와 올해 계획을 들어봤다. ―세종창경센터의 특징에 대해 말한다면. “슬로건을 ‘창업하기 좋은 도시, 세종’으로 정했다. 창업에 있어 중요한 조건이 거주와 이동이다. 세종시는 국토의 정중앙에 위치해 어디든 2∼3시간 내에 이동할 수 있다. 중앙 부처나 기관이 모여 있는 것도 창업에 이점이 되는 요소다.” ―세종창경센터의 소상공인 창업 지원 사업은 어떤 게 있나. “신사업창업사관학교-로컬 크리에이터 지원 사업-강한 소상공인 지원 사업(라이콘·LICORN)의 3단계로 운영된다. 라이콘은 ‘Lifestyle & Local Innovation uniCORN’의 약자로, 일상과 라이프스타일 및 로컬 분야 혁신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라이콘타운’도 대전시와 함께 조성해서 대전과 세종 지역 내 창의적인 예비 소상공인의 운영과 성장을 돕고 있다. 세종창경센터는 일상과 관련한 소상공 아이템을 발굴하고 있다. 지난해 50개 팀을 선발해, 팀당 1억 원의 지원금을 전달했다.” ―2024년 사업 성과를 설명해 달라. “작년에는 스타트업들의 글로벌 진출 프로그램에서 큰 성과를 냈다. 예를 들면 ‘스위트바이오’라는 바이오테크 스타트업은 3평(약 9.9㎡) 남짓한 소매장으로 출발해 3000평(약 9900㎡) 규모의 공장을 거느리며 연 매출 260억 원을 기록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세종창경센터가 이 회사를 지원해 일본 도쿄 번화가인 오모테산도에 플래그십 매장까지 열었다. 디저트 식품에 까다로운 일본인의 입맛을 공략해 현지에서도 인기가 많다. 일회용 종이컵을 자동 세척, 건조, 보관하는 시스템을 개발한 스타트업 ‘나와’도 일본 내 은행이나 기업 등과 도입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 밖에도 여러 세종 스타트업이 작년 두각을 나타냈다.” ―대학교와의 청년 창업 교류 현황은 어떤가. “세종시 소재 대학생을 대상으로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로컬 콘텐츠타운을 운영 중이다. 매년 4팀을 선발해 지역 크리에이터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세종 유니온(UNION) 창업아이디어 경진대회도 진행하고 있다. 창업아이디어를 가진 대학생들이 세종시의 지역 문제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정보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올해 사업 목표는 무엇인가. “올해도 ‘창업하기 좋은 도시, 세종’의 기본 목표는 분명하다. 예비 창업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겠다. 우수한 스타트업이 중견 및 대기업과 협력함으로써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에도 좀 더 공격적인 지원을 제공하려 한다. 특히 올해 ‘팁스 투자 기업’으로 세종 스타트업이 많이 선정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심혈관질환 환자와 고위험군은 특히 겨울에 조심해야 한다. 기온이 떨어지면 혈관이 수축한다. 혈관이 좁아지다가 완전히 막혀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악화할 수 있다. 혹은 동맥경화가 있는 혈관이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협심증(변이형 협심증)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때 굳은 혈관이 터지면 역시 급성 심근경색이 돼 버린다. 심근경색은 초응급 상태다.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가야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유철웅 고려대 안암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60분 이내에 막힌 혈관을 뚫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심근경색은 여름보다 겨울에 발생 확률이 높다. 심근경색은 겨울철 돌연사의 가장 큰 주범에 속한다. 심근경색 위험을 낮추면 돌연사 위험도 낮출 수 있다. 유 교수는 “평소 심혈관 건강에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정기적으로 관상동맥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심근경색과 돌연사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심혈관질환에 대한 정보를 알아둘 필요도 있다.● 협심증부터 알아두자 심장혈관이 이런저런 이유로 좁아지면 심장에 혈액이 덜 전해진다. 심장은 3개의 심장혈관으로 연결돼 있는데, 이를 관상(冠狀)동맥이라고 한다. 동맥경화증이나 혈전(血栓·피떡)으로 관상동맥의 70% 정도가 막히거나, 혈관 수축 등으로 협착되면 혈액 공급이 줄어든다. 심장으로 가는 산소와 영양도 부족해진다. 심장이 이른바 허혈(虛血·혈액 부족) 상태에 빠진다. 이것이 협심증이다. 협심증은 보통 3종류로 구분한다. 첫째가 동맥경화증으로 인해 혈관이 협착해 생기는 협심증이다. 만성 협심증, 혹은 안정형 협심증이라고 한다. 둘째, 죽상(粥狀)경화증으로 인해 생긴 혈전이 혈관을 막아 생기는 것을 불안정형 협심증이라고 한다. 셋째, 죽상경화증이 없는데도 혈관이 경련을 일으키거나 수축하는 바람에 혈류 장애가 생기는 협심증으로, 변이형 협심증이라고 한다. 동맥경화와 죽상경화는 비슷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다르다. 두 증세가 동시에 나타날 수도 있다. 동맥경화는 말 그대로 동맥이 단단히 굳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노화와 고혈압이 가장 큰 원인이다. 섬유화가 진행돼 혈관 탄력도가 떨어져 혈류 공급이 원활하지 않게 된다. 혈관 건강에 더 치명적인 건 죽상경화다. 죽상경화의 가장 큰 원인은 지방과 콜레스테롤이다. 동맥의 가장 안쪽 벽에 지방과 콜레스테롤 덩어리가 쌓여 혈전이 된다. 혈전에 혈소판, 적혈구까지 달라붙으면 덩어리는 점점 커진다. 이 커진 덩어리가 혈관을 막으면 혈류 장애가 생긴다. 이런 현상이 뇌동맥에서 일어나면 뇌경색, 관상동맥에서 일어나면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이 된다.● 다양한 징후를 잘 살펴야 60세 남성 이진성(가명) 씨는 어느 날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가슴에서 쿵쿵거리는 느낌도 들었다. 한숨을 자주 내쉬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런 증세가 1∼2분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러다 증세가 지속되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나중에는 10분 이상 통증이 이어졌다. 유 교수는 이 씨가 협심증 단계를 지나쳐 심근경색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추측했다. 이 씨가 고혈압과 고지혈증이 있는 데다 상당한 흡연가였기 때문.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흡연 비만은 심혈관질환의 대표적인 위험인자(因子)다. 유 교수는 “위험인자를 가진 고위험군의 경우 흉통뿐 아니라 흉부 불편감이 그 전조 증세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며칠 동안 그전에 느끼지 못했던 불편한 느낌이 가슴과 그 주변에 나타난다면 협심증 여부를 의심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협심증 단계에서는 흉통이 나타나더라도 강도와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묵직한 통증을 느끼지만, 어떤 사람은 바늘로 콕콕 찌르는 통증을 느낀다. 반면 쥐어짜는 듯한 통증을 느끼는 이도 있다. 통증이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 그 대신 무거운 돌덩어리를 가슴에 얹은 것처럼 답답할 수 있다. 이 씨가 그런 사례에 속했다. 때에 따라서는 어지럼증이 나타날 수도 있고 호흡 곤란을 호소할 수도 있다. 방사통(放射痛)이 생겨서 왼쪽 턱과 귀에 통증이 느껴질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증세가 협심증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 육안으로는 구분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유 교수는 20대 초반 여성 박지수(가명) 씨 예를 들었다. 박 씨는 심한 흉통으로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박 씨 심장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박 씨는 고혈압도, 당뇨도 없었고 흡연자도 아니었다. 협심증 위험인자가 없는 것. 유 교수는 “박 씨는 직전에 연인과 헤어졌다고 했는데, 그 상실감에다 위장관 문제 등이 겹쳐 흉통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흉통이나 흉부 불편감이 협심증으로 인한 것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유 교수는 “심전도검사나 운동부하검사를 받으면 협심증 여부를 알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50대 이후에는 1, 2년마다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협심증이 진단되면 증세에 따라 치료법은 다르다. 혈관확장제와 항혈전제를 쓰는 게 보통인데 막힌 정도가 심하다면 스텐트 시술을 한다.● 남녀 증세 약간씩 달라 대체로 여자보다는 남자가 심혈관질환 발병률이 높다. 남자들이 음주와 흡연에 더 많이 노출돼 있고 고혈압 유병률(有病率)도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도 심혈관질환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특히 폐경 이후 여성일수록 그렇다. 유 교수는 “여자는 나이가 들어 혈관질환이 생기면 호르몬 영향으로 동맥경화가 더 빨리 진행된다. 혈관 크기도 남자보다 작아 혈전도 더 쉽게 생기는 체질이 된다”고 말했다. 협심증일 때 나타나는 증세도 남녀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다. 남자는 보통 운동을 하거나 움직일 때 통증이 나타났다가 쉬었을 때 사라지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활동량이 많아지면서 심장이 빨리 혈액을 공급해야 하는데 혈관이 좁아져 있어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다. 휴식을 취하면 다시 혈액 공급이 원활해지면서 통증이 사라지는 것. 반면 중년 이후 여자에게는 이 같은 흉통보다는 흉부 불편감이 더 많이 나타나는 편이다. 돌덩이를 가슴에 올려놓은 것처럼 답답함을 느낀다. 이른바 화병이라 부르는 증세도 많이 나타난다. 유 교수는 “중년 여성은 비전형적인 경우가 많다. 화병이라고 넘길 게 아니라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게 옳다”고 말했다. 당뇨병 환자는 증세를 아예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당뇨병성 신경증으로 인해 감각이 둔해지기 때문이다. 흉통이나 흉부 불편감이 분명히 있는데도 본인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정기적인 검사 외에는 이를 알아낼 방법이 없다. 고위험군의 경우 특히 신경을 써야 한다. 좁아진 혈관이 막히거나 터진다면 곧바로 급성 심근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20분 이상 통증이 지속된다면 급성 심근경색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신속하게 병원에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 심혈관질환 예방하려면 고위험군은 겨울철 야외 활동을 삼가는 게 좋다. 추운 날씨에 외출할 일이 생기면 보온에 신경을 써야 한다. 유 교수는 “목 윗부분이 열이 많이 발산되는 부위다. 머리와 얼굴 보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자와 마스크는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평소에는 위험인자를 없애는 생활 습관을 유지해야 한다. 유 교수는 “위험인자를 방치하면 심장 건강을 지킬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를 위해 식습관 개선을 권했다. 일단 과식을 피해야 한다. 남은 열량이 내장이나 혈관 벽에 쌓이면서 심혈관질환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약간 허기진 느낌이 들 정도로, 배가 부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만 먹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했다. 야식도 삼갈 것을 주문했다. 음식이 너무 맵거나 짜면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혈압을 높이며 혈관을 수축시킬 수 있다. 음식도 싱거운 느낌이 들 정도로 먹는 게 좋다. 유 교수는 운동을 생활화하라고 주문했다. 식사한 후 바로 드러눕지 말고 단 몇 보라도 움직이는 습관을 만들라는 것이다. 운동을 처음 하는 사람이라면 너무 강도를 높이지 말고 자신에게 맞게 시작해야 한다. 너무 춥거나 더울 때 운동은 피한다. 땀을 흘리면 반드시 물을 마셔줘야 혈액 점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유 교수는 “금연과 절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지만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들만 잘 지켜도 심혈관질환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바람만 스쳐도 아프다는 병이 통풍이다. 대체로 나이가 많을수록, 남자일수록 더 많이 발생한다. 극심한 통증이 대표적 증세다. 하지만 모든 통풍이 그렇지는 않다. 통증이 의외로 미약할 수도 있다. 그 대신 붓거나 결절이 생기는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 경우 관절염으로 오인해 방치할 우려가 있다. 치료를 미루는 동안 염증이 퍼져 뼈와 관절이 손상된다. 이른바 ‘비(非)전형적 통풍’이다. 특히 폐경기 이후 여자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이미애 씨(66)가 그랬다.● 1년 4개월 동안 통풍인지 몰라 1년 전 5월 어버이날 바로 다음 날이었다. 함께 점심 식사를 마친 올케가 이 씨의 왼발을 내려다보더니 물혹 같은 게 튀어나왔다고 말했다. 이 씨가 보니 정말로 달걀만 한 혹이 복숭아뼈 주변에 튀어나와 있었다. 이 씨는 집 근처에 있는 정형외과 의원에 갔다. 의사는 발목 혹보다는 허리 쪽이 더 큰 문제라며 도수치료를 받자고 했다. 몇 번 도수치료를 받았지만, 혹 치료는 따로 하지 않았다. 이 씨는 화가 나서 치료를 중단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때 이 혹은 통풍으로 인한 증세였다. 다만 심각한 통증이 느껴지지 않아 통풍을 의심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게 1년 정도가 흘렀다. 왼쪽 손가락에서 쌀알 모양의 것들이 울퉁불퉁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결절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관절염 정도로만 생각했다. 올 4월 무렵 손가락에 통증이 나타났다. 찬물로 설거지하면 손가락이 시려 왔다. 관절 부위가 점점 부어올랐다. 나중에는 손가락을 굽히지 못할 정도로 악화했다. 사람들을 만날 때면 손수건으로 항상 왼손을 가렸다. 발에도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간헐적으로 통증이 찾아왔다. 발 전체가 부어올랐다. 발바닥 안쪽 아치 부위가 편평해져 신발 바닥에 닿을 정도였다. 원래 신던 신발보다 두 치수 큰 신발을 신어야 했다. 이 씨는 “마치 코끼리 발 같았다”고 했다. 그래도 통증은 극심하지 않아 통풍보다는 무지외반증(拇趾外反症·엄지발가락이 둘째 발가락 쪽으로 휘어지는 현상)을 의심했다. 9월에 진료 잘한다는 정형외과 의원을 소개받아 갔다. 의사는 발과 손가락 모두 통풍으로 진단했다. 그제야 이 씨는 지난 2년 동안 자신을 괴롭힌 증상이 통풍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10월, 이 씨는 이주하 서울성모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를 찾았다. 이 교수는 혈중 요산 수치와 신장 및 간 기능 등을 전반적으로 검사했다. 요산 수치는 dL당 9.2mg이었다. 정상 기준치는 dL당 6mg 미만이다. 통풍이 상당히 진행된 것. X레이 검사에서는 뼈 일부가 손상된 것이 확인됐다. 간 기능도 다소 떨어져 있었다. 다행히 신장 기능은 정상이었다.● 폐경 여성에게 찾아오는 비전형적 통풍 ‘퓨린’(푸린·purine·질소화합물의 일종)이란 물질이 들어 있는 음식을 먹으면 대사 후에 요산이 남는다. 콩팥은 요산을 처리해 소변으로 내보낸다. 콩팥 기능이 약해지는 등의 이유로 요산이 체내에 머물 수 있다. 요산 농도는 짙어지고 관절이나 그 주변 공간에 요산 결정이 쌓인다. 이렇게 되면 관절 등에 극심한 통증이 나타난다. 관절이 손상돼 변형되는 경우도 잦다. 이것이 통풍이 발생하는 원리다. 즉, 혈중 요산 수치가 높은 고(高)요산혈증이 생기고 이후 통풍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씨도 그랬다. 고요산혈증을 유발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대체로 기름진 식습관, 대사증후군, 비만이 원인으로 꼽힌다. 여자들은 폐경 이후에 통풍이 종종 발생한다. 이 교수는 “폐경 이전에는 여성호르몬이 요산을 제거하는 역할을 해서 통풍이 덜 발생하다가 여성호르몬이 줄어드는 폐경 이후 통풍 환자가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이때 여성 통풍은 일반적인 남성 통풍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씨가 대표적인 경우다. 대체로 통풍은 엄지발가락이나 발목에 처음 발생한다. 통증은 극심하며 짧은 시간에 나타났다가 며칠 지나면 사라진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손가락에도 통풍이 나타난다. 물론 극심한 통증을 수반한다. 이 씨는 그렇지 않았다. 발이 붓거나 손가락 결절이 생겼지만 극심한 통증까지는 없었다. 이 때문에 통풍을 알아채지 못했고, 그동안 염증이 지속되면서 뼈 일부가 손상된 것이다. 이 교수는 “발에서 시작해 손가락으로 번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씨는 왜 통풍에 걸린 걸까. 이 교수는 “보통은 신장에서 요산이 잘 배출되지 않으면 통풍이 발생하는데, 이 씨는 신장에 문제가 없었다”며 “기질적인 이유로 요산 처리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는 한때 체중이 많이 나갔고 2006년에는 뇌출혈 투병까지 했었다. 이 교수는 “이런 병력(病歷)이 어느 정도 관련은 있을 수 있다”며 “통풍 환자를 보면 혈압, 당뇨 같은 대사질환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둘째, 술이 어느 정도 통풍 원인이 될 수 있다. 이 씨는 거의 매일 저녁 남편과 술자리를 가졌다. 다만 맥주는 별로 마시지 않아 통풍 걱정은 하지 않았다. 맥주는 퓨린 성분이 있어 혈중 요산 수치를 높인다. 이 교수는 “다른 술도 퓨린 성분은 들어 있지 않지만 요산 배출을 억제하기 때문에 통풍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술은 종류를 불문하고 통풍에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 치료 2개월 만에 확 좋아져통풍은 중증도에 따라 치료법이 다르다. 대체로 염증을 낮추는 약물을 사용하면서 요산 수치를 떨어뜨리는 약물을 병행한다. 통증이 못 참을 정도로 심하다면 수술을 고려할 수도 있다. 이 씨는 염증이 심했고 뼈에 이어 관절 손상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통증 지수가 낮아 수술까지 검토하지는 않았다. 이 교수는 장기적으로 요산 수치를 낮추는 치료법을 택했다. 염증 억제제와 요산 저하제를 투입하면서 혈중 요산 수치 변화를 관찰했다. 이 씨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약을 먹었다. 식습관도 개선했다. 통풍의 경우 약만으로는 치료에 한계가 있다. 퓨린 함량이 적은 음식 위주로 식단을 바꿔야 한다. 이 씨는 일단 술부터 완전히 끊었다. 식단도 채소 위주로 바꿨다. 채소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두부를 들기름에 구워 먹거나 칠리 소스, 땅콩 소스를 곁들여 먹었다. 좋아하던 고기를 줄이고, 심지어 고깃국 국물도 먹지 않았다. 한때 햄버거와 피자도 무척 좋아했지만 일절 손대지 않았다.치료를 시작하고 2개월 만에 몸 상태가 달라졌다.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발의 부기가 눈에 띄게 빠졌다. 발바닥 아치가 다시 생겨났다. 전혀 굽히지 못하던 손가락도 다시 자유롭게 구부릴 수 있게 됐다. 돌처럼 단단했던 관절 부위도 물렁물렁해졌다. 혈중 요산 수치도 넉넉하게 정상 범위인 dL당 4.4mg으로 떨어졌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는 치료 경과가 좋지만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1, 2년 정도 걸린다”며 “통풍은 완치 개념 없이 평생 약을 먹어야 하고, 약을 끊으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렇게 예방하자 요산 수치가 높다고 해서 모두 통풍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 교수는 “고요산혈증 환자의 15% 정도만 통풍이 발생하는데, 그 이유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고 했다. 따라서 요산 수치가 높다고 해서 당장 통풍 약을 먹을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통풍 예방법은 통풍 치료법과 동일하다. 이 씨가 그랬듯이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게 최선이다. 우선 적절한 체중 관리가 필요하다. 비만은 요산 수치를 올릴 수 있다. 식사 습관도 바꿔야 한다. 콩과 미역 등은 퓨린 함량이 적은 반면 내장류나 갑각류, 등푸른생선은 함량이 높다. 이 교수는 “그렇다고 해서 육류를 너무 제한하면 단백질 섭취가 줄어들 우려가 있으니 살코기 위주로 소량씩 먹는 것은 괜찮다”고 말했다. 술은 피하는 게 좋다. 또한 과당도 요산 수치를 높인다. 탄산수 자체는 괜찮지만 탄산음료는 과당이 있기 때문에 가급적 마시지 않는 게 좋다.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있다면 특히 주의해야 한다. 고혈압 약 중에는 혈중 요산 수치를 높이는 약들이 더러 있다. 의사와 상담해서 다른 약으로 교체하는 게 좋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바람만 스쳐도 아프다는 병이 통풍이다. 대체로 나이가 많을수록, 남자일수록 더 많이 발생한다. 극심한 통증이 대표적 증세다. 하지만 모든 통풍이 그렇지는 않다. 통증이 의외로 미약할 수도 있다. 그 대신 붓거나 결정이 생기는 식의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 경우 관절염으로 오인해 방치할 우려가 있다. 치료를 미루는 동안 염증이 퍼져 뼈와 관절이 손상된다. 이른바. ‘비전형적 통풍’인데, 특히 폐경기 이후 여자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이미애 씨(66)가 그랬다. ●1년 4개월 동안 통풍 몰라1년 전 5월, 어버이날 바로 다음날이었다. 함께 점심 식사를 마친 올케가 이 씨의 왼쪽 발을 쳐다보더니 물혹 같은 게 튀어나왔다고 말했다. 이 씨가 발을 보니 정말로 달걀 크기의 혹이 복숭아뼈 주변에 튀어나와 있었다. 이 씨는 근처에 있는 정형외과 의원에 갔다. 의사는 발목의 혹보다는 허리 쪽이 더 큰 문제라며 도수치료를 받자고 했다. 몇 번 도수치료를 받았지만, 혹 치료는 따로 하지 않았다. 이 씨는 화가 나서 치료를 중단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때 이 혹은 통풍으로 인한 증세였다. 다만 심각한 통증이 느껴지지 않아 통풍을 의심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게 1년 정도가 흘렀다. 왼쪽 손가락에서 쌀알 같은 것들이 울퉁불퉁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결정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관절염 정도로만 생각했다. 올 4월 무렵부터 손가락에 통증이 나타났다. 찬물로 설거지하면 손가락이 시려왔다. 관절 부위가 점점 부어올랐다. 나중에는 손가락을 굽히지 못할 정도로 악화했다. 사람들을 만날 때면 손수건으로 항상 왼손을 가렸다. 발에도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간헐적으로 통증이 찾아왔다. 발 전체가 부어올랐다. 발 안쪽의 아치 부위가 편평해져 신발 바닥에 닿을 정도였다. 원래 신던 신발보다 두 치수 큰 신발을 신어야 했다. 이 씨는 “마치 코끼리 발 같았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통증이 극심하지 않아 통풍보다는 무지외반증을 의심했다. 9월에 진료 잘 한다는 정형외과 의원을 소개받아 갔다. 의사는 발과 손가락 모두 통풍으로 진단했다. 그제야 이 씨는 지난 2년 동안 자신을 괴롭힌 게 통풍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0월, 이 씨는 이주하 서울성모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를 찾았다. 이 교수는 혈중 요산 수치와 신장 기능, 간 기능 등을 전반적으로 검사했다. 요산 수치는 9.2mg/dL이었다. 정상 기준치는 6mg/dL 미만이다. 통풍이 상당히 진행됐던 것. X레이 검사에서는 뼈의 일부가 손상된 것이 확인됐다. 간 기능도 다소 떨어져 있었다. 다행히 신장 기능은 정상이었다. ●폐경 여성 ‘비전형적’ 통풍‘퓨린’이란 물질이 들어있는 음식을 먹으면 대사 후에 요산이 남는다. 콩팥은 요산을 처리해 소변으로 내보낸다. 콩팥의 기능이 약해지는 등의 이유로 요산이 체내에 머물 수 있다. 요산 농도는 짙어지고, 관절이나 그 주변 공간에 요산 결정이 쌓인다. 이렇게 되면 관절 등에 극심한 통증이 나타난다. 관절이 손상돼 변형되는 경우도 아주 잦다. 이것이 통풍이 발생하는 원리다. 즉, 혈중 요산 수치가 높은 ‘고요산혈증’이 생기고, 이후 통풍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씨도 그랬다. 고요산혈증을 유발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대체로 기름진 식습관, 대사증후군, 비만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여자들은 폐경 이후에 통풍이 종종 발생한다. 이 교수는 “폐경 이전에는 여성호르몬이 요산을 제거하는 역할을 해서 통풍이 덜 발생하다가, 여성호르몬이 줄어드는 폐경 이후가 되면 통풍 환자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때 여성 통풍은 일반적인 남성 통풍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씨가 대표적인 경우다. 대체로 통풍은 엄지발가락이나 발목 등에 처음 발생한다. 통증은 극심하며 짧은 시간에 나타났다가 며칠이 지나면 사라진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손가락에도 통풍이 나타난다. 물론 극심한 통증을 수반한다. 이 씨는 그러지 않았다. 발이 붓거나 손가락 결절이 생겼지만, 극심한 통증까지는 없었다. 이 때문에 통풍을 알아채지 못했고, 그동안 염증이 지속되면서 뼈의 일부가 손상된 것이다. 이 교수는 “발에서 시작해 손가락으로 번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씨는 왜 통풍에 걸린 걸까. 이 교수는 “보통은 신장에서 요산이 잘 배출되지 않으면 통풍이 발생하는데, 이 씨는 신장에 문제가 없었다”며 “‘기질적’인 이유로 요산 처리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한때 체중이 많이 나갔고, 2006년에는 뇌출혈 투병까지 했었다. 이 교수는 “이런 병력이 어느 정도 관련은 있을 수 있다”며 “통풍 환자를 보면 혈압, 당뇨 등 대사질환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둘째, 술이 어느 정도 통풍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 씨는 거의 매일 남편과 함께 저녁 술자리를 가졌다. 다만 맥주는 별로 마시지 않아 통풍 걱정은 하지 않았다. 맥주는 퓨린 성분이 있어 혈중 요산 수치를 높인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다른 술은 퓨린 성분이 들어있지 않아도 요산 배출을 억제하기 때문에 통풍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술은 종류를 불문하고 통풍에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치료 2개월 만에 확 좋아져통풍은 중증도에 따라 치료법이 다르다. 대체로 염증을 낮추는 약물을 사용하면서 요산 수치를 떨어뜨리는 약물을 병행한다. 통증이 못 참을 정도로 극심하다면 수술을 고려할 수도 있다. 이 씨는 염증이 심했고, 뼈에 이어 관절 손상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통증 지수가 낮아 수술까지 검토하지는 않았다. 이 교수는 장기적으로 요산 수치를 낮추는 치료법을 택했다. 이 교수는 염증 억제제와 요산 저하제를 투입하면서 혈중 요산 수치의 변화를 관찰했다. 이 씨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약을 먹었다. 이와 함께 식습관을 개선했다. 통풍의 경우 약만으로는 치료에 한계가 있다. 퓨린 함량이 적은 음식 위주로 식단을 바꿔야 한다. 이 씨는 일단 술부터 완전히 끊었다. 식단도 채소 위주로 바꿨다. 좋아하던 고기를 줄이고, 심지어 고깃국물도 먹지 않았다. 한때 햄버거와 피자도 무척 좋아했지만, 일절 손대지 않았다. 예전에는 채소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두부를 들기름에 구워 먹거나 칠리소스, 땅콩 소스를 곁들여 먹었다. 치료를 시작하고 2개월 만에 몸 상태가 달라졌다.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발의 부기가 눈에 띄게 빠졌다. 발 안쪽의 아치가 다시 생겨났다. 손가락을 전혀 굽히지 못했는데, 다시 자유롭게 구부릴 수 있게 됐다. 돌처럼 단단했던 관절 부위도 물렁물렁해졌다. 혈중 요산 수치도 넉넉하게 정상 범위인 4.4mg/dL로 떨어졌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는 치료 경과가 좋지만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1,2년 정도 걸린다”며 “게다가 통풍은 완치 개념 없이 평생 약을 먹어야 하고, 약을 끊으면 다시 통풍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통풍 예방 어떻게요산 수치가 높다고 해서 모두 통풍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 교수는 “고요산혈증 환자의 15% 정도만 통풍이 발생하는데, 그 이유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고 했다. 따라서 요산 수치가 높다고 해서 당장 모두 통풍약을 먹을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통풍 예방법은 통풍 치료법과 동일하다. 이 씨가 그랬듯이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게 최선이다. 우선 적절한 체중 관리가 필요하다. 비만은 요산 수치를 올릴 수 있다. 식사 습관도 바꿔야 한다. 콩과 미역 등은 퓨린 함량이 적은 반면 내장류나 갑각류, 등푸른생선에는 함량이 높다. 이 교수는 “그렇다고 해서 육류를 너무 제한하면 단백질 섭취가 줄어들 우려가 있으니 살코기 위주로 소량씩 먹는 것은 괜찮다”고 말했다. 술은 피하는 게 좋다. 또한 과당도 요산 수치를 높인다. 탄산수 자체는 괜찮지만 탄산음료는 과당이 있기 때문에 가급적 마시지 않는 게 좋다.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있다면 특히 주의해야 한다. 고혈압 약 중에는 혈중 요산 수치를 높이는 약들이 더러 있다. 의사와 상담해서 다른 약으로 교체하는 게 좋다. <이미애 씨의 ‘비전형적 통풍’ 투병일지>-2023년 5월 : 발목 복숭아뼈 부위에 달걀 크기 혹 발생. 동네의원 진료에서 원인 못 밝힘. 이후 진료 사실상 중단-2024년 4월 : 손가락 관절이 붓고 통증이 나타남. 발 전체가 퉁퉁 부어오르고 간헐적 통증 시작됨-2023년 9월 : 동네의원에서 통풍 의심 소견-2023년 10월 : 서울성모병원 류마티스내과에서 통풍 확진. 발에서 시작해 손가락으로 확산됐다고 판단. 염증억제-요산저하 치료 병행-2023년 12월 : 2개월만에 증세 크게 호전. 앞으로 3개월 단위로 증세 체크 예정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60대 초반 여성 강순희(가명) 씨는 최근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허리 통증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강 씨는 다시 병원을 찾아 검사했지만 수술 부작용은 아니었다. 이후 통증은 더 심해졌다. 엉덩이를 지나 다리로까지 번졌다. 5분도 채 걷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강 씨는 문지연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를 찾았다. 정밀 검사해 보니 극심한 척추관협착증이 발견됐다. 장비를 투입해 유착 부위를 벌려 줬고, 통증 완화 약물을 투입했다. 이 치료 후 강 씨의 통증 점수는 8점(가장 아프면 10점)에서 1점으로 줄었다. 1시간 이상 거뜬히 걸을 수 있게 됐다. 문 교수는 “통증은 다양한 이유로 발생한다. 가장 먼저 통증 원인이 되는 질병을 찾아내 적절한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씨가 허리디스크 수술 후유증으로 오인하고 진통제만 먹었다면 통증은 더 악화했을 테고, 척추관협착증은 더 심해졌을 거란 뜻이다. ● 통증, 이것만은 알아두자 통증 자체는 병이 아니다. 우리 몸이나 정신에 손상이 발생하면 신경계가 그것을 포착해 뇌에 전달한다. 그러면 뇌는 불쾌감을 느낀다. 그게 바로 통증이다. 그러니까 통증은 건강 이상 증세이자 경고등인 셈이다. 통증은 원인에 따라 몇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가 가장 흔한 침해성 통증이다. 어떤 병에 걸렸을 경우 과도한 자극에 노출되면 신경에서 뇌로 통증 신호가 전달된다. 그러면 뇌는 통증을 느낀다. 관절통이나 허리 통증이 대표적이다. 강 씨가 이런 경우다. 둘째가 신경병성 통증이다. 신경 자체가 다쳐서 발생한다. 통증 수용체가 아무런 자극을 받지 않았는데도 통증을 느끼거나 작은 통증을 극심한 통증으로 느낀다. 대표적인 것이 대상포진 후에 나타나는 통증이다.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신경 조직을 손상시킴에 따라 극심한 통증이 나타난다. 셋째, 발병 메커니즘이 밝혀지지 않은 통증도 있다. 이 경우 대뇌 혹은 자율신경계에 이상이 있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통증은 크게 급성과 만성으로 나눈다. 보통은 3개월을 기준으로, 그 이상 통증이 지속된다면 만성으로 규정한다. 일반적으로 만성 통증은 질병으로 규정해 따로 치료해야 한다. 가령 손가락을 베거나 다쳤다면 급성 통증이 생긴다. 하지만 2주 내외로 상처가 아물며 통증도 사라진다. 그 후로도 계속 아프다면 만성 통증으로 악화할 수 있다. 병원을 찾아 정확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발생하는 퇴행성 질환에 따른 통증도 만성 통증이다. 문 교수는 “다른 통증과 달리 퇴행성 질환으로 인한 통증은 완치 개념이 없다. 통증을 완화하는 치료를 한다”고 설명했다. ● 통증 치료는 질병에 맞게 30대 초반 여성 이정민(가명) 씨는 6개월 전 일본 의료기관에서 피를 뽑다 손끝에 번개가 내리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부터 통증이 시작됐다. 손이 붓고 빨개졌다. 피부가 벗겨지는가 싶더니 살짝 스치기만 해도 아팠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은 더 심해졌다. 손톱과 털이 지나치게 빨리 자랐다. 관절은 굳어 버렸다. 이 씨는 귀국한 뒤 문 교수를 찾았다. 문 교수는 채혈 과정에서 신경이 일부 손상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야 했다. 병명을 찾기까지는 한 달이 걸렸다. 최종적으로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이란 진단을 내렸다. 바람만 스쳐도 아프다는 희소 질환이다. 3개월 동안 신경을 차단하는 치료를 시행했다. 교감신경이 흥분하면 혈관은 수축하고 통증은 심해진다. 이를 막기 위해 교감신경을 차단하는 것. 정맥주사도 놓았고 마약성 진통제도 투여했다. 하지만 통증은 잡히지 않았다. 문 교수는 척수 신경 자극기를 이 씨의 몸 안에 이식했다. 극심한 통증이 발생할 때 이 전기 장치를 가동하면 자극 효과를 발생시켜 통증을 억제한다. 이렇게 6개월간의 치료 끝에 이 씨의 통증 점수는 8∼9점에서 2∼3점으로 떨어졌다. 문 교수는 “제대로 병을 밝혀냈기에 통증 처치가 가능했다. 통증 치료는 원인 질환을 얼마나 밝혀내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가령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문 교수를 찾은 70대 남성 박지석(가명) 씨의 치료법은 완전히 다르다. 박 씨는 이마에 대상포진이 걸렸다. 수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신속하게 항바이러스제를 투입해야 하는데 명절 연휴라서 병원에 가지 못했다. 치료 시기가 좀 늦어진 데다 당뇨병으로 혈당 조절도 잘 안 되는 상황이었다. 통증이 심해졌다. 박 씨가 느끼는 통증 점수는 9점 이상이었다. 문 교수는 항경련제와 항우울제를 낮은 용량으로 투여한 뒤 단계적으로 용량을 올렸다. 통증이 신경에 전달되지 않도록 말초신경을 초음파로 일시 차단했다. 효과가 나타났다. 통증이 점점 줄어들었다. 문 교수는 약 용량을 줄였고, 대상포진 예방 백신도 맞도록 했다. 이후 박 씨의 통증 점수는 1∼2점으로 떨어졌다.● 원인 모르는 통증 치료는? 섬유근육통은 전신에서 통증이 나타나는 병이다. 수면 장애나 피로감을 동반하기도 하는데, 병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사소한 통증도 과민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통증 민감도가 높은 것. 이런 경우 통증 치료는 어떻게 할까. 40대 초반 대학교수 민현지(가명) 씨는 오랫동안 무용을 했다. 무용을 하다 여러 차례 다쳤고, 학교의 경쟁적 환경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운동만 하면 근육이 뭉치는 것 같았다. 초반에는 마사지로 풀어주면 괜찮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효과가 없었다. 통증은 더 심했다. 아침에 몸이 굳기도 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는 두통까지 심해졌다. 문 교수는 섬유근육통으로 진단하고 관련한 약을 처방했다. 곧 효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문 교수는 새로이 수면 치료를 실시했다. 뇌로 올라가는 통증의 신호를 조절하고, 뇌가 통증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막는 약을 투입하는 치료다. 부작용으로 환각 효과가 있어서 수면 상태에서만 투입한다. 이어 보톡스 치료를 통해 두통도 개선했다. 민 씨는 통증 점수가 다소 줄었다. 하지만 극적으로 통증이 낮아지지는 않았다. 문 교수는 “통증을 받아들이는 심리 문제도 있다. 민 씨의 경우 통증을 과도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병행할 때가 많다. 최근 들어 병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통증 환자가 꽤 많아졌다. 문 교수는 “수면 장애, 기분 장애, 불안 장애 모두 통증을 유발한다. 이럴 때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함께 받는 게 치료 효과를 높이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 진통제 먹을까, 참을까? 통증 치료에 가장 많이 쓰이는 약물이 진통제다. 침해성 통증일 때는 소염제를, 신경병성 통증일 때는 항우울제나 항경련제를 투입한다. 평소에는 복용하지 않다가 극심한 통증이 나타날 때만 먹는 약도 있다. 패치 형태 진통제도 있고 마약성 진통제도 있다. 그 어떤 진통제든 환자가 임의로 선택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문 교수는 “통증 양상이나 지속성 등을 고려해 진통제를 처방한다. 그런데도 별 차도가 없다면서 처방된 진통제를 먹지 않는 환자들이 더러 있다. 정반대로 아프다면서 무작정 아무 진통제나 먹는 환자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 어느 쪽이든 통증 치료에는 방해가 된다. 문 교수는 “통증 원인에 따라 가장 적합한 약을 찾아야 한다. 환자가 적극적으로 통증 양상을 설명해야 제대로 된 치료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노인 통증의 경우 진통제로는 해결이 안 될 때도 많다. 관리에 더 집중해야 한다. 근력이 떨어지는 대신 살이 찌면 통증은 더 악화한다. 술, 수면 장애, 혈당도 통증을 악화하니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은 ‘청년상인 판로개척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청년 상인들의 판로를 확장하고 제품을 홍보하며 상인 간의 교류를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양한 형태의 공동 판매전을 지원한다. 지원 대상은 전통시장과 전통상점가에 입주한 만 39세 이하의 청년 상인이다. 지원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온라인 공동 판매전을 통해 유명 온라인 플랫폼과 라이브커머스를 활용해 청년 상인의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를 지원한다. 둘째, 오프라인 공동 판매전을 연다. 지역 축제와 연계해 청년 상인의 경쟁력 있는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며 여기에 참여한 상인들의 네트워크를 만든다. 셋째, 청년 상인 축제에서는 우수 제품을 전시하고 판매함으로써 청년 상인의 판로를 확대한다.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전통시장이나 상점가, 골목형 상점가 안에 청년몰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세워진 청년몰은 따로 ‘청년몰 활성화 사업’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 사업은 청년몰의 홍보·마케팅을 강화하고 청년 상인의 자생력을 증대하기 위해 소진공이 추진하고 있다. 공동 마케팅과 홍보, 청년상인 교육, 컨설팅, 메뉴 개발, 협동조합 운영, 공동상품 개발 등 청년몰 활성화 사업에는 청년몰 1곳당 최대 4억 원까지 지원한다. 상권 규모나 청년 가게 수 등에 따라 지원 액수는 달라질 수 있다. 이 외에도 청년상인 영업 기반 시설, 고객 유입 촉진 시설, 점포 추가 조성, 기반 시설 확장 비용도 지원한다. 청년몰 활성화 지원사업에 대한 구체적 사항은 소진공 누리집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전통시장이 변신하고 있다. 한때 존폐 위기에 놓였던 전국의 전통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시장이 되살아나자 지역 상인들도 숨통이 트였다. 관광객이 몰리면서 명소로 발전한 전통시장도 늘어나고 있다. 이 변화의 주역은 청년이다. 청년들이 전통시장에 둥지를 틀고 지역 상인과 협업하며 시장을 이끌었다. 성공 사례로 꼽히는 청년 상인들을 소개한다. ● 삼척 청년몰, 지역과 상생하는 ‘청년희망플랫폼’ 강원 삼척시 진주로에 있는 삼척중앙시장은 1770년 읍내 장으로 출발했다. 전통시장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75년. 삼척탄전이 번성할 때 크게 번영했지만 광업 쇠퇴로 어려움을 맞았다. 이러다가 시장 자체가 사라질 것 같았다. 그때 청년들이 이곳에 왔다. 2018년 12월, 청년몰 ‘청춘해’를 만들었다. 청춘해는 시장 건물의 2층과 3층에 자리 잡았다. 이후 이 지역은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의 아지트가 됐다. 현재 20여 개의 가게가 성업 중이다. 2층에는 노브랜드 매장과 푸드코트를 비롯해 돈가스와 햄버거를 파는 가게가 있다. 3층에는 도자기 공방, 미용실, 수족관, 꽃집 등이 포진해 있다. 청년몰 청춘해의 박영훈 대표는 돈가스 가게를 운영 중이다. 박 대표에게 청춘몰의 장점을 물었다. 박 대표는 “청년이 지역사회에서 창업에 도전할 때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과 지자체 등의 도움을 받아 저비용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저렴한 임차료 외에도 창업에 필요한 교육 서비스까지 제공함으로써 일종의 ‘창업 인큐베이팅’ 역할을 한다. 삼척 청년몰은 지역사회와도 적극 협력한다. 삼척시와 연계해 지역 축제와 행사에 참여한다. 청년몰 공간에서 문화 공연을 진행하거나 분기별로 플리마켓을 연다. 이런 노력의 결과 지역민들의 참여가 활발해졌고, 삼척시장을 찾는 관광객도 크게 늘었다. 박 대표는 “삼척시장 청년몰은 청년 상인의 열정과 지자체, 다양한 기관이 잘 어우러져 성공한 대표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삼척 청년몰은 내년 KTX 개통을 앞두고 삼척관광문화재단과 협업해 삼척 투어 애플리케이션도 개발하고 있다. 더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전통 만두로 글로벌 시장 개척 ‘육거리소문난만두’충북 청주시 석교동 도심에 육거리시장이란 전통시장이 있다. 여섯 갈래의 길이 만나는 곳에 있다고 해서 육거리시장이라 부른다. 청주 육거리시장에서 장사하는 소상공인은 2000여 명이다. 하루 방문객이 1만여 명에 이를 만큼 지역 명소로 자리잡았다. ‘육거리소문난만두’는 1970년대 노점으로 시작해 1980년대 이 시장에 자리 잡았다. 이후 3대, 50년 동안 전통의 맛을 지켜 왔다. 하지만 후계자가 없어 폐업 위기에 놓였다. 그러던 중 2020년, 은행원이었던 이지은 씨가 후계자를 자처해 사업을 이어갔다. 폐업 당시 육거리소문난만두의 대표는 이 씨 남편의 친척이었다. 그 인연을 통해 사업을 ‘물려받은’ 것. 이 대표는 무말랭이를 활용해 독특한 만두소를 만들어냈다. 지역의 신선한 재료를 주로 썼다. 그러다 ‘코로나 사태’를 맞았다. 전통시장은 아우성이었지만 이 대표는 적극적인 판로 개척에 나섰다. 소진공의 온라인 판로 개척 지원이 도움이 됐다. 이 대표는 온라인 플랫폼 판매와 라이브 커머스를 강화했다. 그 결과 네이버 쇼핑 냉동만두 부문 1위에 올랐다. 육거리소문난만두는 2023년 8억10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는 20억 원이 예상된다. 2025년 36억 원 달성을 목표로 세웠다. 특히, 올해 미국 시장 진출을 시작으로 아시아와 유럽 등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설 계획이다. 건강과 채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최신 흐름과 현지 사정에 발맞춰 ‘제로 슈거 만두’와 ‘비건 만두’를 개발해 차별화에 성공했다. 이런 제품들은 해외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전통시장에서 출발했지만, 혁신을 통해 전통시장의 이미지를 현대화하고 소비자층을 해외로까지 확장한 것이다. 이 대표는 “전통시장은 단순한 거래의 공간을 넘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소중한 터전”이라며 “전통시장과 상생하며 글로벌 브랜드로 나아가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육거리소문난만두는 전통시장이라는 뿌리를 지키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더해 지역 경제와 전통시장의 지속가능한 성장 모델을 구축하고,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는 청년 상인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전통시장 창업을 선택한 ‘느린먹거리by부각마을’광주 광산구 1913송정역시장은 1913년 출범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강조하기 위해 시장의 이름에 출범 연도인 ‘1913’을 넣었다. 바로 이 1913송정역시장에서도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창업에 성공한 청년 상인이 있다. 바로 ‘느린먹거리by부각마을’의 노지현 대표다. 노 대표는 김부각을 만든다. 2015년, 어린 아들이 김부각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잊혀 가던 전통 먹거리의 가치를 생각하게 됐다. 1913송정역 시장에 가게를 차렸다. ‘왜 쇠퇴해 가는 전통시장에 터를 잡느냐’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노 대표는 전통시장을 고집했다. 시장의 문화와 전통에 기반한 성장 가능성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순수미술을 전공한 그는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마음으로 창업했다. 김부각이 밥반찬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현대인의 간식으로 재탄생시켰다. 저염식, 고품질 재료, 한입 크기라는 특징을 내세웠다. 노 대표는 “제품을 판매하기보다 우리 먹거리가 이렇게 훌륭하다는 점을 알리고 싶어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선택은 옳았다. 그의 브랜드는 로컬 유명 점포로 자리 잡았다. 부각의 연간 누적 판매량은 125만 개. 연평균 5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노 대표는 “전통시장에서 고객과 직접 만나며 경험한 피드백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 시장이 단순한 판매 공간을 넘어 지역성과 가치를 연결하는 플랫폼이 됐다”고 했다. 이제 글로벌 시장을 노리고 있다. 2028년까지 80억 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허받은 비건 부각 레시피를 개발하고, 제조 공장 설립도 추진 중이다. 노 대표는 “지역을 기반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전통 먹거리를 만들고 싶다. 부각을 통해 감자칩을 대체할 수 있는 세계적인 간식 문화를 만드는 것이 나 자신을 성장시키고 사회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시장에서 시작한 작은 아이디어가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간다면 그 자체로 성공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공동기획동아일보·중소벤처기업부·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뇌는 가장 정교한 장기다. 호흡과 움직임을 비롯해 모든 생각과 행동을 관장한다. 그만큼 뇌 질환은 종류도 많고 복잡하다. 가벼운 두통인 줄로만 알았는데, 심각한 뇌 질환일 때도 있다. 이 때문에 일차 의원에서 뇌 질환을 체계적으로 다루기는 쉽지 않다. 환자들 또한 증세가 나타나면 대형 병원 응급실부터 찾는다. 하지만 대형 종합병원 못잖은 첨단 의료장비를 갖추고, 뇌 질환을 전반적이며 체계적으로 다루는 의원도 드물지만 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강남구 논현로의 이태규뇌리신경과의원이다. ● 23년 역사의 뇌 전문 의원이태규뇌리신경과의원은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의 뇌신경센터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뇌 신경계와 관련한 장비를 거의 대부분 갖추고 있다. 의원의 역사도 오래됐다. 2002년 이태규 대표원장이 문을 열었다(당시는 이태규신경과의원). 23년째 뇌 질환을 전문으로 다루고 있다. 이태규뇌리신경과의원에는 5명의 신경과 전문의와 1명의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포진해 있다. 신경과 전문의는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 진료한다. 가령 이 대표원장의 경우 두통과 뇌혈관 질환, 혈관성 치매를 주로 보며, 뇌중풍(뇌졸중) 예방을 위한 진료도 한다. 파킨슨병, 치매, 삼차신경통, 어지럼증, 뇌전증, 안면경련과 통증, 수면장애, 수전증 등의 질병은 다른 4명의 신경과 전문의가 각각 맡는다. 이런 식으로 뇌 질환 대부분을 살피고 있다. 이 점이 이태규뇌리신경과의원의 강점이다. 다른 신경과 의원은 대부분 1, 2명의 전문의가 이 모든 분야의 진료를 맡는다. 이 원장은 “수술을 제외하고는 모든 뇌 질환을 신속하게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게 우리 의원의 가장 큰 장점이다. 전문의가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의 진료를 하는 곳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대학병원 응급실로 무조건 가기보다는 제대로 된 일차 의원에서 진료를 먼저 받는 게 옳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 원장은 장비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자기공명영상(MRI) 자기공명혈관영상(MRA) 장비를 모두 갖추고 있다. 특히 3.0 테슬라 MRI 장비는 국내 웬만한 대학병원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최신 사양이다. 촬영 속도가 빠르고 결과도 빨리 나오며 정밀도도 높다. 이 장비 가격만 20억∼30억 원에 이른다.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일차나 이차 병원의 진료를 먼저 받아야 한다. 환자들이 밀려 있어 예약 잡기도 쉽지 않다. 반면 이태규뇌리신경과의원은 당일 예약, 당일 진료가 가능하다. 검사 결과도 이르면 당일, 늦어도 다음 날에는 나온다. ● “뇌 질환 제대로 진료” 23년 동안 뇌 질환을 전문으로 다루다 보니 최고 기록도 많다. 특히 두통 분야에서는 압도적이다. 매년 4000여 명의 환자가 이 원장을 찾는다. 전국 각지에서 환자가 온다. 내원 환자의 30∼40%가 지방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다. 이 원장은 “전국에서 환자가 몰려오는 것은, 우리 의원의 의사들이 친절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의사들이 깐깐하다고 말하는 환자들도 적잖다”고 말했다. 친절보다는 치료를 잘한다는 입소문이 나서 지방에서 환자들이 올라온다는 것. 환자들이 늘다 보니 주 6일 진료는 기본이다. 이 대표원장은 “주말에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직장인들이 많아 토요일 진료를 안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은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단의 정확도다. 우리는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최첨단 장비를 동원한다”고 말했다. 얼마 전 70대 남성 A 씨가 이태규뇌리신경과의원을 찾았다. A 씨는 두통이 심하다고 했다. 이 원장은 A 씨에게 다른 증세가 나타나는지를 확인했다. 속이 메슥거리거나 어지럼증 같은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두통이 좀 더 심해졌다고 했다. 이 원장은 정밀 검사를 위해 뇌 MRI 검사를 시행했다. 뇌출혈이 발견됐다. 이 원장은 즉각 A 씨를 대학병원 응급실로 보냈다. 이 원장은 “두통은 때론 사소해 보이지만, 이처럼 중증 뇌 질환의 전조 증세이기도 하다. 이런 사례가 매달 한두 건은 꼭 발생한다. 단순 두통이라고 여기고 무심코 넘기기 쉬운데 두통이 지속된다면 반드시 정밀 검사를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최근 대한두통학회가 ‘이태규펠로우십’이란 상을 제정했다. 두통 연구에 기여한 의학자에게 해외 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상이다. 개원가 의사의 이름으로 상을 만드는 건 매우 드문 사례다. 사실 이 원장은 1988년 만들어진 대한두통학회의 창립 멤버다. 지금까지도 두통에 관련해서는 대학병원, 개원가를 통틀어 명의로 꼽힌다. ● 뇌 종합검진 시행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뇌 질환을 예방하려면 미리 점검하는 게 필수다. 이를 위해 이 원장은 뇌 전문 종합검진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런 프로그램을 일차 의원이 가동한다는 것부터가 이례적이다. 프로그램은 올 6월 시작했다. 처음에는 매주 수요일에만 시행했는데, 검진을 요청하는 환자들이 많아서 지금은 화, 목요일로 확대했다. 검진 프로그램은 크게 3단계로 나뉘어 있다. 가격은 단계별로 다르다. 1단계는 뇌 MRI와 뇌혈관 MRA, 경동맥 초음파로 구성돼 있다. MRI는 뇌 구조의 모양과 변화를 살필 때 유용하다. MRA는 뇌혈관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에 좋다. 경동맥 초음파는 경동맥의 혈액 흐름이나 혈관 두께 등 여러 가지를 파악한다. 경동맥은 뇌로 가는 혈액의 80%가 통과하는 길이다. 2단계 검진은 1단계 검진에 혈액 종합검진이 추가된다. 3단계 검진은 2단계에 목 혈관 MRA가 추가된다. 어떤 사람이 뇌 종합검진을 받는 게 좋을까. 일단 △60세 이상 남녀 △뇌경색이나 뇌출혈을 앓은 적이 있는 사람 △고혈압, 당뇨, 고지혈이 있거나 있었던 사람 △하루 반 갑 이상 담배를 피우는 사람 △주 2회 이상 과음하거나 매일 술을 마시는 사람 △부정맥, 협심증, 심근경색 등 심장질환이 있는 사람 △가족이나 친척 중에 뇌졸중이 있었던 사람 등이 모두 뇌 종합검진의 대상자다. 다만 검진 주기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대체로 가족력이 있거나 그전에 이상 소견이 발견된 적이 있다면 MRI는 2∼4년, MRA는 1년마다 검사하는 게 좋다. ● 치매 분야 확대 예정 이 원장이 최근 주력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가 치매다. 이태규뇌리신경과의원에서는 치매 인지중재 치료를 시행한다. 환자는 월 2회, 의원으로 와서 1시간 동안 도형을 그리거나 낱말을 이어 붙이는 등 뇌를 자극하는 훈련을 받는다. 전문의와 작업치료사가 참여한다. 환자의 상태에 맞춰 레벨을 정한다. 문제를 해결하면 다음 레벨로 넘어가는 식이다. 모든 훈련이 끝나면 과제를 준다. 환자는 다음 훈련 때까지 스스로 그 과제를 이행한다. 이 원장은 “주 3회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사실 이익만 따지자면 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의사와 작업치료사가 적극 개입하는데, 필요한 공간도 마련돼야 하고 별도 프로그램도 있어야 하기 때문. 이 의원에서는 치매를 전문으로 보는 전문의가 따로 있다. 이 대표원장도 치매를 치료한다. 이 원장은 “고령인구가 늘어나면서 치매 환자도 늘어나고 있다. 이 분야 전문 인력을 더 영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치매 예방 효과가 큰 신약도 곧 처방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의원을 더 발전시키려면 대표원장인 이 원장부터 건강해야 한다. 그의 건강 비결을 물었다. 일단 이틀마다 30∼40분씩 유산소운동을 빠짐없이 한다. 몸에 나쁜 술과 담배는 일절 손에 대지 않는다. 식단은 지중해 식단으로 짠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작은 장치 하나만 몸에 착용하면 혈압, 혈당 등 건강정보가 수시로 병원으로 전달된다. 의사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처방을 내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데이터를 분석하면 각각에 맞는 운동법과 식단도 알려준다. 병원에 가지 않고도 모든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홈 헬스케어’ 시스템이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뒷받침만 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이런 방식의 홈 헬스케어 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술력은 이미 어느 정도 갖췄다는 뜻이다. 홈 헬스케어의 현주소를 점검한다. ● 진단에 도움 주는 웨어러블 기기 23세 남성 A 씨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세가 자주 나타났다. 심하면 정신을 잃기도 했다. 동네 의원에서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러던 중 심장에 이상이 있을지 모른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고려대 안암병원을 찾았다. 의료진은 부정맥일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심전도 검사에서는 별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증세가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경우 환자가 병원에 도착할 무렵 그 증세가 사라질 때가 더러 있다. A 씨가 그런 사례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의료진은 심전도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시계형 웨어러블 기기를 착용하도록 했다. 이틀 후 A 씨에게 가슴 두근거림 증세가 다시 나타났다. A 씨는 즉시 고려대 안암병원으로 갔다. 의료진은 웨어러블 기기에 저장된 데이터를 분석했고, 그 결과 심실빈맥을 발견했다. 심실빈맥은 돌연사를 유발할 수 있어 신속하게 치료해야 하는 질병이다. 50대 여성 B 씨도 A 씨와 상황이 비슷했다. 가슴 두근거림 때문에 응급실을 몇 번이나 찾아갔다. 하지만 그때마다 결과는 정상으로 나왔다. 혹시나 해서 정신건강의학과 검사도 받았다. 그러던 중 패치 형태의 웨어러블 기기를 착용했고, 심방세동을 발견했다. 당뇨병 환자들도 이런 웨어러블 기기를 쓴다. 기기에 꽂힌 바늘이 혈당을 일정한 간격으로 체크해서 스마트폰으로 전송한다. 식후 혈당이 얼마나 오르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 데이터를 분석하면 혈당이 잘 조절되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이런 유형의 자가 검사나 심전도 측정은 이미 시행되고 있다. 병원에 가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질병 데이터를 축적하고 진단과 치료에 도움을 준다. 이런 점 때문에 전문가들은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한 진단과 검사를 ‘홈 헬스케어의 시작 단계’로 규정한다. 웨어러블 기기는 시계, 패치, 반지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피부 안쪽에 이식하기도 한다. ● 보완해야 할 과제들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자들이 이런 기기를 이용해 건강을 관리하면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 의료비용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웨어러블 기기 시장은 커지고 있다. 웨어러블 기기를 착용하면 데이터가 곧바로 수집돼 의료기관에까지 전송도 가능하다. 원격으로 전달된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는 환자의 건강 상태를 살필 수 있고, 처방도 내릴 수 있다. 특히 식이요법이 필요한 당뇨병 환자의 경우 이런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혈당 관리가 수월해진다. 하지만 이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박홍석 고려대 구로병원 비뇨의학과 교수(고려대의료원 의학지능실장)는 “일단 그 기기들이 의료 장비로 안전한지 신뢰가 확보돼야 한다. 또 환자들의 어떤 데이터를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표준화 작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까지는 이런 시스템을 참고 자료로 활용할 뿐, 당장 의료 서비스로 연결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박 교수는 “정부 차원의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일부분이다”라고 덧붙였다. 원격의료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의료 서비스가 개별적이고 맞춤형으로 제공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법적·제도적 문제가 남아있다. 이를테면 A 씨 웨어러블 기기가 수집한 데이터를 곧바로 병원으로 전송해 의료진이 A 씨의 심장 관련 데이터를 바로 분석해서 결과를 통보했다고 치자. 이것은 원격의료에 해당한다. 하지만 아직 현행 법에서는 대학병원의 원격의료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의사가 환자들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처방하는 것을 의료 서비스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의료 서비스로 본다면 신의료기술로 채택한 뒤 적정한 서비스 가격(의료수가)을 매겨야 하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아직 국내 홈 헬스케어는 초보적 단계지만, 정보통신기술(ICT), 인공지능 기술이 고도화하고 있는 만큼 정책적 관심과 지원이 더해진다면 가능성은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 단골 의원이 헬스케어보통 65세가 되면 통념상 노인으로 본다. 하지만 의학적으로는 나이가 아니라 단순 만성질환자인지, 복합 만성질환자인지가 더 중요하다. 중년이 되면 고혈압이나 당뇨 등 만성질환이 하나씩 발생한다. 중년을 넘기면서 고지혈증이 추가되거나 당뇨 합병증이 생기는 등 여러 만성질환이 동시에 나타난다. 이 상태를 복합 만성질환이라고 한다. 김도훈 고려대 안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복합 만성질환자가 되면 협심증, 만성콩팥증, 당뇨병성망막병증 등 심각한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단순 만성질환에서 복합 만성질환으로 이행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시간 원격의료가 해법이 될 수 있지만 아직은 의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처방은 없을까. 김 교수는 “동네 단골 의원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헬스케어를 받는 게 가장 좋다”고 했다. 병을 키워 대형 병원을 찾을 게 아니라 가까운 동네 의원에서 건강 상태를 수시로 살피자는 것. 일단 만성질환자라면 동네 의원을 홈 헬스케어의 ‘본부’처럼 사용하란 뜻이다. 김 교수는 또 단골 의사와 언제든지 전화로 상담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출 것을 강조했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와의 전화 상담은 의료행위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단순 상담으로 여기는 것. 김 교수는 “5∼10분 동안 의사가 전화 통화를 통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그에 맞는 대가가 책정돼야 이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될 것”이라고 말했다. ● 고령자 재택의료 시스템 갖춰야거동이 어려운 고령 환자를 위한 홈 헬스케어, 즉 ‘재택의료’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박건우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대한재택의료학회 이사장)는 “건강하지 못한 노인은 병원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한다. 그분들을 위해 의사가 직접 찾아가는 ‘방문 의사’ 제도가 정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때도 법적 문제가 생긴다. 의료법상 의료행위는 병원 안에서 행해져야 한다. 예외 규정들이 있긴 하지만 1차 의원이 아닌 대학병원 의사의 경우 방문 진료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다. 현재 정부가 방문 진료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박 교수에 따르면 100∼200명의 의사가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박 교수는 “그 의사들은 대부분 휴일도 없이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방문 진료만 전문으로 하는 의사 C 씨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C 씨는 아침 일찍 사무실에 나와 환자에 대한 상황을 파악하고 하루 동선을 짠다. 환자는 대부분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다. C 씨는 휴대용 엑스레이, 초음파 기기, 컴퓨터 등을 들고 다닌다. 현장에서 혈액도 채취하고 검사도 시행한다. 환자 한 명을 진료하는 데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일반 의원 진료 시간보다 상당히 길다. 박 교수는 “일단 방문해 보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약효가 듣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대부분 약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며, 약 관리만 잘해줘도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다는 것. 박 교수는 “지금까지는 병원에 와야 안심이 되는 시대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병원 밖에서도 안심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것이 진짜 홈 헬스케어”라고 거듭 강조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나이가 들면 눈이 침침해진다. 노안이다. 귀가 먹먹해지다가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노인성 난청이다. 노안과 노인성 난청은 생명에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이 두 질환을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최대한 늦추거나 증세를 완화시킬 수는 있다. 눈과 귀를 건강하게 보호하는 방법을 찾아보자. ● 40대부터 시작되는 노안나이가 들어 눈이 침침하고 가까운 사물이 잘 안 보인다면 노안이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 노안이라고 해서 시력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송종석 고려대 구로병원 안과 교수는 “눈이 안 보인다며 병원을 찾아온 40대와 50대 환자 중에 정상 시력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시력 감퇴가 노안의 원인이 아니란 얘기다”라고 말했다. 노안은 수정체의 탄력성과 관련이 있다. 원래 가까운 것을 볼 때는 수정체가 두꺼워지고, 멀리 있는 것을 볼 때는 수정체가 얇아진다. 하지만 노화로 인해 수정체의 탄력성이 떨어지면 이 조절력이 떨어져 가까운 사물을 잘 볼 수 없게 되는 것. 노안을 늦추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송 교수는 “동공을 수축시켜 수정체의 역할을 돕는 방식으로 노안을 해결해주는 약물이 해외에선 상품화돼 팔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나이가 들면 백내장을 피하기도 쉽지 않다. 70대의 경우 백내장이 있는 경우가 90%를 넘을 정도다. 나이가 들면서 투명했던 수정체가 혼탁해지거나 다치면서 안개가 낀 것처럼 사물이 흐려 보이거나 빛 번짐이 있는 질병이다. 백내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으면 굳이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 만약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하는 게 좋다. 그렇지 않으면 시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엄영섭 고려대 안산병원 안과 교수는 “수술은 10∼20분이면 끝나고 큰 부작용도 없다”라고 말했다. 각막을 2∼3mm 절개해서 초음파 기구를 넣고 백내장이 생긴 수정체를 빼내고 인공수정체를 삽입한다. 상처 부위가 아무는 데 2개월 정도가 걸린다. ● 올바른 눈 관리법 송 교수는 “눈 영양제로 알려진 건강 기능성 식품을 먹는다고 해서 노안과 백내장을 늦출 수는 없다. 일상생활에서부터 습관을 바꾸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송 교수와 엄 교수에게 눈 관리법을 들어봤다. 첫째, 자외선을 차단해야 한다. 자외선이 눈의 노화를 유발한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시신경 보호를 위해 금연은 필수다. 둘째, 눈에 작은 병이라도 생긴다면 눈의 노화가 더 빨리 진행된다. 가령 눈에 염증이 생기는 포도막염이 있을 때 수정체도 빨리 노화한다. 따라서 안과 질환이 발생하면 곧바로 대응해야 한다. 셋째, 안구 건조를 막아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근거리 작업을 많이 하고 눈을 많이 쓸수록 눈이 마르기 쉽다. 이럴 때 인공눈물만 넣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안구 건조가 진행되면 안구 표면에 상처가 생기고 염증으로 이어진다. 염증을 억제하는 치료를 해야 노화를 늦출 수 있다. 휴대전화는 안구 건조증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평균 4초마다 눈을 깜빡이는 게 정상인데, 휴대전화에 집중하면 수십 초 동안 눈을 깜빡이지 않을 수 있다. 넷째, 평소 근거리 작업을 했다면 가끔 먼 곳을 응시하는 게 좋다. 눈을 쉬게 하자는 취지다. 최소한 10초 이상은 먼 곳을 보도록 하자. 눈동자를 돌리는 식의 ‘눈 체조’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체조를 한다면 눈동자를 너무 크게 돌리면 안 된다. 시신경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따뜻하게 눈 마사지를 하는 것도 좋다. 이렇게 하면 눈물에 있는 기름 성분이 배출된다. 10분 정도 해 주면 좋다. 젖은 수건보다 마른 수건이 좋고, 대략 40도 내외의 온도가 적당하다. 세게 눈을 누르면 각막 등에 손상이 갈 수 있으므로 살짝 대는 식으로 마사지하는 게 좋다. 눈 마사지 기구들은 안압을 올릴 수 있어 녹내장 환자는 피해야 한다. ● 노인성 난청 예방해야 노인성 난청은 퇴행성 변화로 인해 청력이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국내의 경우 65세 이상 인구의 38% 정도에서 발견된다. 노인성 난청은 이르면 30대부터 시작된다. 이후 점차 심해져서 60대 이후에는 청력이 거의 들리지 않는수준까지 악화할 수도 있다. 노인성 난청이 시작되면 이명부터 나타난다. 임기정 고려대 안암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라디오가 고장 나면 잡음이 나는 것과 같은 원리”라며 “나이가 들수록 고음이 잘 안 들리고 ‘삐’ 하는 이명이 들린다”라고 말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낮은 소음의 이명이 들리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두통이 동반되기도 하는데, 청력과 관련된 근육에 문제가 생긴 근육성 난청일 확률이 높다. 근육성 난청은 일시적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큰 소리에 노출된 게 원인인 소음성 난청도 있다. 소음성 난청은 당장 노인성 난청과는 관련이 없지만 방치했을 경우 청각 신경에 손상이 갈 수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나중에 노인성 난청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소음 난청도 미리 치료하는 게 좋다. 노인성 난청이 심해지면 청력이 떨어진다. 보통 청력의 40%가 손상되면 보청기 착용을 검토해야 한다. 청력의 50%가 손상되면 반드시 보청기를 착용해야 한다. 청력 손상 정도가 60%에 이르면 청각 장애 진단을 받게 된다. 임 교수는 “보청기를 착용해야 하는데도 노화를 인정하지 않고 착용을 거부하는 환자들이 더러 있다. 그 경우 청력은 더 빠른 속도로 나빠진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런 상태를 방치할 경우 치매 확률도 높아진다. 임 교수는 “잘 들리는 사람과 난청이 있는 사람을 5∼10년 동안 비교했더니 난청이 있는 사람이 치매 발병 확률이 5배 높다는 연구가 있다”라고 말했다. 소리가 뇌를 충분히 자극하는데, 잘 듣지 못하니 뇌에 미치는 자극이 떨어진다는 것. ● 귀 건강 관리법 노인성 난청에 걸리면 치료하기가 쉽지 않다. 임 교수는 “난청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고 광고하는 건강기능식품들이 많은데, 아직 의학적으로 난청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은 없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우선 노인성 난청으로 이어질 수 있는 소음성 난청을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음에 덜 노출돼야 한다. 귀를 혹사해서는 안 된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나는 소음은 40∼60dB이다. 이어폰을 쓰고 음악을 큰 소리로 들을 때 소음은 80∼100dB 정도까지 올라간다. 이런 습관이 반복되면 소음성 난청에 걸리기 쉽다. 둘째, 난청 자가 진단을 해보자. 먼저 △전화 통화에 어려움이 있는지 △두 명 이상과 동시에 대화하기가 어려운지 △TV 볼륨을 높여 주변 사람들이 불평한 적이 있는지 △대화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지를 떠올려 보자. 이어 △시끄러운 장소에서 듣기가 어려운지 △다른 사람에게 다시 말해 달라고 청했는지 △사람들이 중얼거리는 것처럼 보이는지를 점검한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잘못 이해해 부적절한 행동을 했는지 △특히 아이나 여자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운지 △다른 사람의 말을 잘못 이해해 주변에 피해를 줬는지를 따져 보자. 총 10개의 문항에서 3개 이상 해당한다면 난청의 위험이 크다. 이비인후과에 가서 조언을 구하는 게 좋다. 임 교수는 “정기적으로 청력 검사를 받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셋째, 식습관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짠 것과 단것, 매운 것을 많이 먹으면 메니에르병과 같은 귀 질환에 걸릴 수 있다. 이 또한 난청으로 악화할 수 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학생들의 취업과 창업을 지원하는 것이 대학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됐다. 가톨릭대 취·창업처는 이 역할 수행에 적극적이다. 학생들의 역량을 개발하고 적성에 맞는 분야로 진출하도록 돕는다. 이를 위해 취업·창업과 관련된 주요 정보들을 제공한다. 진로 선택, 취업 전략, 기업 실무, 창업·브랜딩 등 다양한 수업을 개설해 운영한다. 취업 진로 상담사가 개인별 맞춤 상담을 한다. 취·창업처의 주요 프로그램은 크게 세 분야로 나뉜다. 첫째, 진로 탐색 및 설계 프로그램은 진로와 관련된 정보와 콘텐츠를 제공한다. ‘나를 찾는 학기 페스티벌’과 ‘진로 취업 페스티벌’, 동문 멘토링 등이 진행된다. 둘째, 경력 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취업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강좌를 운영한다. 4차 산업혁명과 빅데이터, 사무 자동화(OA) 실무, 포토샵, 일러스트 등 전문 교육과정이 준비돼 있다. 셋째, 실전 취업 프로그램을 통해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 작성, 면접, 기업 분석 등의 특강을 진행하고 ‘취업 박람회’, ‘커리어 업 페스티벌’ 등을 연다. 이 가운데 취업 박람회는 가톨릭대 동문이 후배들을 위해 직접 취업 상담을 진행하는 점에서 학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고 있다. ‘나를 찾는 커리어 페스티벌’은 2022년부터 매년 운영되고 있는데, 기업 인사 담당자가 상담을 진행한다. 올해는 9월에 열렸으며 삼성전자, LG에너지솔루션, 카카오게임즈 등 22개 기업이 참여했다. 10월에는 경기 부천시청 잔디광장에서 이틀 동안 산학연 협력사업인 ‘부천시-LINC3.0 대학 연합 RISE UP 커리어 페스티벌 2024’가 진행됐다. 가톨릭대는 채용 지원 부스, 평생교육원 체험 부스 등 30여 개 부스를 운영했다. 채용 지원 부스에서는 무료 취업 컨설팅을 진행했다. 취업 지원·채용관에서는 한국산업인력공단, 중소기업중앙회, 서울시관광협회 고용지원센터, 커리어넷, 중공업 및 첨단산업, 식음료 기업, 공공기관 등 7개의 부스가 운영됐다. 참가자들은 다양한 기업에 대한 취업 정보는 물론이고 자기소개서 첨삭 지도 등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김종일 가톨릭대 취·창업처장(사진)은 “학생들의 취업과 창업 활성화가 가장 중요한 목표”라며 “앞으로 동문 멘토링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학생들이 저학년 시기부터 취업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확대,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졸업생들의 취업과 이직을 돕는 맞춤형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학생들이 직무와 관련해 실질적 경험을 쌓을 기회도 마련한다. 김 처장은 “학생들에게 현장 실습, 인턴십 등의 기회를 최대한 제공해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하고, 현장에서 활동하는 선배들을 초청해 재학생과 만나는 시간을 늘려 나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김 처장은 이어 “창업 활동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며 “더 많은 학생이 창업에 관심을 갖고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고혈당, 고혈압, 고지혈증 등 이른바 ‘3고(高)’는 건강 수명을 단축하는 대표적 요인이다. 방치하면 만성질환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비만, 동맥경화까지 있다면 물리적 수명도 줄어들 수 있다. 이처럼 여러 질환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을 대사증후군이라고 한다. 남성의 경우 40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대사증후군의 위험에 노출되고, 50대에 최고치에 이른다. 반면 여성의 경우에는 여성호르몬이 적게 나오는 50대 이후부터 대사증후군 위험이 커진다. ● 대사증후군 위험인자김신곤 고려대 안암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고혈당, 고혈압, 고지혈증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하나가 생기면 다른 하나가 생기기도 쉽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복부 비만을 특히 주의할 것을 강조했다. 복부 비만이 인슐린 저항성을 높이고, 만성 염증을 유발하면 ‘3고’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사증후군은 여러 합병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대한당뇨병학회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는 당뇨병이 없는 사람에 비해 심혈관계 질환 발생 위험이 남성은 2∼3배, 여성은 3∼5배 높다. 당뇨병 환자가 말기 신장질환에 걸릴 위험도 5배 가까이 높다. 김 교수는 고혈당, 고혈압, 고지혈증, 복부비만, 흡연, 과도한 스트레스 등 6개의 위험인자가 급성심근경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밝히는 해외 연구 사례를 예로 들었다. 이 연구 결과 1개의 위험인자만 있어도 급성심근경색 위험이 2배 높았다. 위험인자가 1개씩 추가될 때마다 급성심근경색 위험은 2배씩 높아졌다. 만약 6개 위험인자를 모두 갖고 있다면 급성심근경색 위험이 64배 높아지는 것이다. 뇌중풍(뇌졸중) 위험도를 따졌을 때도 결과는 비슷하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절망할 필요는 없다”며 “위험인자를 1개씩만 줄여도 위험도는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말했다. 예컨대 6개 위험인자 중에서 담배만 끊어도 급성심근경색에 걸릴 위험이 64배에서 32배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 심근경색 어떻게 대비할까 심혈관계 질환은 혈관에 동맥경화가 생기면서 발생한다. 건강하다면 혈관 벽이 튼튼하고 탄력성이 좋다. 하지만 고혈압이나 고혈당 등으로 인해 혈관 벽이 약해지면 LDL(저밀도지방단백질) 콜레스테롤 같은 나쁜 콜레스테롤이 혈관을 뚫고 들어간다. 혈관 내 세포가 손상되며 염증반응이 일어나고, 고지혈증은 더 악화한다. 더 심해지면 협심증이나 급성심근경색과 같은 관상동맥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전조 증세를 알아 두는 게 좋다. 나승운 고려대 구로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가슴 통증이 가장 흔한 증세”라며 “통증의 양상을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관상동맥질환일 때의 가슴 통증은 일단 조이고 압박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나 교수는 “혈관이 70% 이상 좁아지면서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통증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빨리 걷거나 운동할 때 가슴이 답답하면서 통증이 나타난다. 운동을 하면 더 많은 혈액이 필요한데 즉시 공급되지 않아 통증을 느끼는 것. 따라서 운동을 중단하면 통증이 줄어든다. 왼 팔 쪽으로 통증이 확산할 수도 있다. 반면 오른쪽 팔쪽으로는 통증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상복부나 목 주변까지 통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 나 교수는 “이런 흉통이 느껴지면 곧바로 병원으로 가야 한다”며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간혹 가슴 통증의 양상이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 혈관이 좁아진 게 아니고 수축해서 생긴 협심증이라면 운동할 때만이 아니라 아무 때나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밤이나 새벽에 통증이 심한 경향이 있다. 가슴 통증은 덜한 대신 숨이 차고 속이 쓰리는 환자들도 있다. 당뇨병 노인 환자의 경우 아무런 증세를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 뇌졸중 전조 증세 잘 살펴야뇌졸중의 가장 큰 위험인자도 어김없이 ‘3고’다. 이상헌 고려대 안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심장질환이 뇌졸중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의 경우 혈전이 생겨 뇌혈관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특히 중년 이후에는 정기적으로 심장 검사를 하는 것이 뇌졸중을 막는 방법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뇌졸중은 전조 증세를 잘 살펴야 한다. 첫째, 안면마비 여부를 판단한다. 거울을 보고 입술이 한쪽으로 돌아갔는지, 입꼬리의 좌우 모습이 다른지를 보면 된다. 둘째, 반신마비 여부를 살핀다. 뇌졸중이라면 주로 한쪽으로만 마비가 나타난다. 왼쪽 팔과 왼쪽 다리, 아니면 오른쪽 팔과 오른쪽 다리가 마비됐다면 뇌졸중을 의심해야 한다. 셋째, 언어장애를 확인한다. 언어를 구사하는 근육이 마비되면서 말이 어눌해질 수 있다. 실어증에 걸린 것처럼 말을 잘 하지 못하거나 엉뚱한 말을 할 수도 있다.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넷째, 평형장애를 판단한다. 자꾸 몸이 한쪽으로 기울거나 중심을 잡지 못한다. 이 밖에도 한쪽 눈이 안 보이거나, 물체가 두 개로 보이는 복시 현상이 나타난다. 갑작스러운 두통과 구토, 어지럼증 등의 증세가 나타날 수도 있다. 증세가 나타나면 지체없이 병원에 가야 한다. 4시간 이내에 정맥에 혈전용해제를 투입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동맥에 혈전용해제를 투입할 때도 6시간 전에 처치해야 한다. ● 예방이 건강수명 늘리는 최선 그렇다면 이 모든 질병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 교수가 제시한 방법은 똑같았다. 첫 번째는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것. 이 교수는 “대사증후군에 걸리지 않도록 몸을 잘 관리해야 한다”며 “금연하고 술은 적게 마셔야 하며 충분히 자고, 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 교수도 “급성심근경색과 협심증의 위험인자는 어김없이 고혈당, 고혈압, 고지혈증이다”라며 “이 세 가지를 관리하면서 금연, 절주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90세 이상 장수한 사람을 대상으로 시행한 미국 보스턴대 연구의 예를 들며 생활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90세까지 장수한 사람의 경우 유전적 원인은 30%인 반면 환경적 원인이 70%에 달했다. 이에 더해 김 교수는 “생활 습관이 좋으면 좋지 않은 유전적 요소가 있어도 발현되지 않는다”며 “반대로 생활 습관이 나쁘면 그 유전적 요소가 발현된다”고 말했다. 생활 습관과 관련해 30년 동안 미국에서 진행된 또 다른 연구가 있다. 살이 찐 당뇨병 전 단계의 사람들을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눠 조사한 결과다. A그룹에는 가짜 약을 주고, B그룹에는 당뇨병 약을 예방 목적으로 줬다. C그룹은 1년 동안 7%의 체중 감량을 목표로 하고 생활 습관을 개선하도록 했다. 1년 후 결과가 흥미로웠다. A그룹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B그룹의 30% 정도는 당뇨 진행이 더뎠다. C그룹은 B그룹보다 20% 더 효과를 봤다. 게다가 장기 연구를 통해 이렇게 만들어진 생활 습관은 30년 후까지 이어진다는 사실도 이후 연구에서 밝혀졌다. 식사와 운동 관리도 중요하다. 김 교수는 식단과 관련해서 극단주의를 피할 것을 주문했다. 몸에 좋은 영양소만 먹는다거나 특정 영양소만 피하는 식의 다이어트는 금물이란 것. 전체 열량을 줄이되 모든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는 식단이 만성 질환을 예방하는 최고의 식단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식사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며 “천천히 먹으면서 음식을 즐겨야 몸 안의 장기에도 부담이 덜 가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도 운동은 가능하다. 김 교수는 “일부러 조금씩 불편하게 사는 게 좋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몇 개 층은 걸어 올라간다. 쇼핑을 갈 때는 일부러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걸어간다. 김 교수는 “이런 식으로 2, 3개월만 꾸준히 습관을 바꾸면 최적의 생활 습관이 만들어진다”고 거듭 강조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기둥은 건물의 하중을 지탱한다. 외부의 충격에 맞서 버틴다. 기둥이 부실하면 건물은 무너질 수 있다. 우리 몸에서 기둥의 역할을 하는 것은 척추다. 척추는 20대 때부터 관리해야 한다. 20대 때부터 척추 퇴행성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방치하면 점점 ‘몸의 기둥’이 손상될 수 있다. 물론 척추질환이 있다고 해서 물리적 수명이 당장 짧아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삶의 질은 크게 떨어진다. 건강수명이 단축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척추를 중심으로 골격을 튼튼하게 유지해야 하는 이유다. ● 허리 디스크 vs 척추관협착증 대표적 퇴행성 척추질환인 허리 디스크(추간판탈출증)와 척추관협착증은 발병 시기나 증세가 다르다. 허리 디스크는 척추뼈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하는 디스크에 문제가 생기는 병이다. 활동을 많이 하는 30대와 40대, 50대에 많이 발병한다. 반면 척추 주위의 인대나 뼈가 두꺼워지면서 생기는 척추관협착증은 60대와 70대에 더 많이 생긴다. 허리 디스크가 생기면 통증이 나타난다. 김주한 고려대 구로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통증이 엉덩이와 다리로 내려가며, 심하면 다리를 절룩거리거나 허리를 굽히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대소변을 보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초기에 발견했을 때는 6개월 정도 약을 먹으면서 물리치료를 하면 대부분 좋아진다. 허리 통증을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이와 달리 척추관협착증은 통증이 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서서히, 오랜 시간에 걸쳐 병이 악화한다. 증세가 나타나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조금 많이 걸었다 싶으면 다리가 저리거나 화끈거린다. 불편하니 덜 움직이려고 한다. 김 교수는 “안 움직이다 보면 걸으려 할 때 다시 불편감이 느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며 “심각한 정도에 따라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육통을 두 척추질환과 혼동할 때도 많다. 김 교수는 “엉덩이에서부터 무릎 위쪽까지만 아프다면 근육통일 가능성이 크다”며 “허리 디스크라면 무릎 아래쪽도 아플 때가 많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근육통은 대체로 3, 4주면 증세가 대부분 사라진다. ● 허리 건강을 위한 생활 원칙70대 이후까지도 튼튼한 골격을 유지하려면 최소한 40대부터는 척추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한다. 김 교수와 양재혁 고려대 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에게 반드시 지켜야 할 생활 원칙을 물었다. 첫째, 아침에 일어나면 반드시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 몸의 관절을 부드럽게 만들어야 근력 운동을 해도 갑작스러운 손상을 막을 수 있다. 김 교수는 “운동선수들도 스트레칭부터 하고 본격적으로 운동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양 교수는 “평소 신전 운동을 자주 해 주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반듯하게 선 채로 두 팔을 허리에 대고 상체와 목을 뒤로 젖힌다. 그 상태에서 5초 정도 멈춘 후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 이를 반복하면 된다. 서서 하는 게 힘들다면 의자에 앉아 해도 된다. 요령은 같다. 둘째, 유산소 운동을 되도록이면 매일 하는 게 좋다. 이 경우 체중 감소를 목적으로 한다. 아주 빠른 속도로 걷는 게 아니라면 근력 운동은 따로 해야 한다. 만약 걷기를 한다면 운동 시간은 2시간 정도가 좋다. 이렇게 운동한다면 하루 1만 보 정도를 채울 수 있다. 셋째, 근력 운동은 매주 2회 정도 해야 한다. 김 교수는 “중량이 무거운 것을 들려고 할 필요는 없다”며 “주로 허리와 등, 엉덩이 등 코어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을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양 교수는 “40대와 50대라면 스쾃, 플랭크, 팔굽혀펴기 등 세 동작만 자주 반복해도 충분한 코어 운동이 된다”고 설명했다. 보통은 한 동작을 할 때 3∼5세트를 반복해 주는 게 좋다. 가령 스쾃을 할 경우 20회를 이어 한 뒤 1분을 쉬었다가 다시 하는 식으로 2∼4세트를 추가로 해야 한다. 양 교수는 “중간에 쉬어 주지 않으면 근육에 과부하가 생기기 때문에 휴식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플랭크와 팔굽혀펴기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 1세트를 한 뒤 이어서 2세트와 3세트까지 하는 게 좋다. 넷째, 같은 자세로 오래 있는 것은 피해야 한다. 관절이 굳고 근육량이 줄어들면서 퇴행을 촉구하기 때문이다. 의자에 앉아서 1시간 일했다면 최소한 5∼10분은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해 주는 게 좋다. ● 고령자와 환자는 운동 어떻게? 아직 척추가 건강하다면 60대까지도 스쾃, 플랭크, 팔굽혀펴기를 자주 하는 게 좋다. 보통은 일주일에 2, 3회는 하는 게 좋다. 김 교수는 “60대 이전에 근력을 키워 놓지 않으면 70대 이후에 척추 질환이 생길 때 회복하는 속도도 더딜 수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고령자들에게 특히 계단 오르기를 추천했다. 양 교수는 “계단을 오를 때는 무릎을 30도 정도만 구부려도 된다”며 “무릎에 부담이 덜 간다”고 설명했다. 이때 시선은 정면의 15∼30도 상단을 향해야 한다. 배를 약간 내미는 기분으로 걸어야 허리가 펴진다. 고령자일수록 속도를 내려 하지 말고 벽에 있는 난간은 반드시 잡는 게 좋다. 허리 디스크 진단을 받았다면 초기 2, 3주는 쉬는 게 좋다. 만약 통증이 나타나는 정도의 급성기라면 4∼6주는 쉬어야 한다. 양 교수는 “디스크가 파열되지 않고 단순히 튀어 나왔다고 하더라도 적응하고, 자연 치유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근력 운동은 더 오래 쉬어야 한다. 양 교수는 “통증이 80% 이상 줄었을 때 근력 운동을 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척추관협착증의 경우는 좀 다르다. 허리 디스크는 대체로 급성으로 나타나지만 척추관협착증은 만성일 때가 많다. 오랫동안 병이 진행됐다는 뜻이다. 이럴 때는 활동을 줄인다고 해서 척추 상태가 개선되지 않는다. 오히려 근육이 약해지지 않도록 운동을 계속 해줘야 한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통증이 더 심하고, 그러면 움직이지 않아 증세가 더 악화하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 양 교수는 “20분씩 나눠서라도 쉬지 않고 운동하면서 부족한 운동량을 채워야 한다”고 말했다. ● 보조기 사용해도 괜찮을까 수술한 뒤 일상생활로 복귀하려면 재활 치료가 필요하다. 암이나 뇌중풍(뇌졸중) 같은 중증 질환만 그런 게 아니다. 척추질환 수술한 뒤에도 마찬가지다. 김동휘 고려대 안산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척추질환 수술의 경우 1, 2주 정도는 안정을 취하며 단계적으로 재활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술 직후에는 보조기를 착용한 상태에서 제자리에 서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게 가능해지면 걷기 훈련을 한다. 김 교수는 다만 환자가 아닌 사람이 보조기나 복대를 착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런 보조 도구를 착용하면 정작 써야 할 코어 근육이 움직이지 않게 되고 결국에는 위축돼 버린다”고 말했다. 몸에 힘이 없다며 복대를 착용하는 노인들도 많다. 이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통증이 심할 경우에는 복대를 착용해도 될까. 김 교수는 이에 대해서도 “참을 수 있을 정도라면 착용하지 않는 게 낫고, 통증이 너무 심하다면 그때에만 잠시 착용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결국 척추질환자나 골절 수술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면 보조기를 착용하지 않는 게 코어 근육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통증이 심하다면 통증의 원인부터 찾아내 치료하는 게 옳다. 김 교수는 허리가 굽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방을 등 뒤로 메고 다닐 것을 권했다. 단, 끈을 늘어뜨려 가방이 허리까지 내려오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허리가 앞으로 굽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앉는 자세도 중요하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은 2022년 기준 82.7세다. 반면 건강수명은 65.8세다. 65.8세까지는 건강하게 살지만 이후 16.9년은 장애를 얻거나 질병이 있는 상태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더 큰 문제는 건강수명이 점점 짧아진다는 점이다. 2020년 건강수명은 66.3세였다. 2년 사이에 0.5세가 줄어든 것. 건강수명을 늘리는 일이 가장 큰 헬스케어 이슈가 됐다. 동아일보와 고려대의료원은 건강수명 연장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공동 진행한다.》치매와 파킨슨병은 대표적인 신경 퇴행성 뇌 질환이다. 여기에 우울증까지 겹치면 노년의 삶은 괴롭다. 하지만 중년 때까지만 해도 ‘나의 문제’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틀린 생각이다. 40대부터 뇌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한다. 노인이 되고 병에 걸리고 난 후에 대책을 찾으려면 늦을 수도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치매와 파킨슨, 미리 주의하자 정상적이라면 뇌에 이상 단백질이 쌓여도 자연스럽게 제거된다. 나이가 들고 뇌 기능이 떨어지면 이상 단백질이 계속 쌓이면서 치매와 파킨슨병을 유발한다. 증세가 서서히 진행되기에 한참 후에야 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도 많다. 권도영 고려대 안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치매는 뇌의 피질에서부터 이상 단백질이 쌓여 안쪽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초기에는 인지 장애와 기억력 저하 등과 같은 증세가 나타난다. 반면 파킨슨병은 뇌 안쪽의 뇌간에서부터 이상 단백질이 쌓여 위쪽으로 범위를 넓히기 때문에 운동 기능이 떨어지는 운동장애가 가장 먼저 나타난다”고 말했다. 평균적인 발병 연령대는 약간 다르다. 치매는 주로 65세 이후에 발병한다. 65세 이후의 10% 정도는 치매로 이어진다. 반면 파킨슨병은 65세 이후에 3, 4% 정도가 발병한다. 파킨슨병은 그보다는 더 젊은, 60세 전후에 더 많이 온다. 40대에 발병할 수도 있다. 어떤 뇌 질환에 걸리든 시간이 지나면 두 질병이 중첩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파킨슨은 몸이 느리고 걸음도 느리다. 손이 떨린다. 치매는 인지 기능이 크게 떨어진다.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증세가 한꺼번에 나타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치매 치료제 분야에서 최근 눈에 띄는 성과가 있었다. 해외에서 개발된 ‘항체 주사’인데, 아밀로이드와 같은 이상 단백질을 제거하는 효과가 크다. 이르면 내년 국내에서도 이 치료제가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이찬녕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는 “기존 약이 치매 진행 속도를 3, 4년 늦췄다면, 새로운 항체 주사는 9, 10년을 늦춰 준다”고 설명했다. 다만 치매를 완치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 2주마다 1회씩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연간 3500여만 원이 들어가 경제적 부담이 커지는 것도 해결 과제다. ● 뇌의 회복탄력성을 높여야 권 교수는 “잘 관리하면 뇌를 젊게 유지할 수 있다”며 “노화와 충격 등에 잘 견디고 정상 상태로 돌아가는 ‘회복탄력성’을 높이면 된다”라고 말했다. 뇌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면 뇌가 쪼그라들거나 기능이 떨어져도 치매나 파킨슨병이 늦게 발생하거나 증세가 약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뇌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려면 우선 금연하고 적절한 체중을 유지해야 한다. 동시에 우울감이 생기지 않도록 감정 상태를 관리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신체 활동이다. 권 교수는 높은 강도의 운동을 추천했다. 권 교수는 “산책하는 수준으로 걷는다면 기분 전환이나 다이어트에 좋을 수는 있지만 뇌의 회복탄력성을 높이기엔 역부족이다”며 “숨이 찰 정도의 강도로 빨리 걷거나 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무릎 관절이 아프다면 실내 자전거 타기로 대체하거나 벽에 손을 짚으면서 계단을 오르는 것도 좋다. 권 교수는 유산소 운동과 함께 근력 운동을 반드시 병행할 것을 권했다. 나이가 들면서 근육이 급격하게 감소하기 때문이다. 여러 근력 운동 중에 특히 코어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을 해야 한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스쾃이다. 그 외에도 여러 방법이 있다. 일단 천장을 보고 눕는다. 무릎을 세운다. 엉덩이, 허리, 등을 최대한 올린다. 10∼30초 유지한 뒤 처음 자세로 돌아간다. 이렇게 5∼10회 시행하면 좋다. 또 다른 동작도 있다. 엎드린 상태로 발을 쭉 뻗는다. 양팔은 가슴 옆에 둔다. 이마는 바닥에 붙인다. 이어 가슴, 어깨, 머리 순서대로 상체만 일으킨다. 10∼30초 유지하고, 5∼10회 시행하는 것은 동일하다.● 두뇌 자극하고 사회적 접촉 늘려야 치매를 예방하거나 초기 인지 장애 단계에서 병을 지연시키려면 뇌를 자극하는 게임을 자주 하는 게 좋다. 화투나 퍼즐 같은 게임이 적합하다. 다만 하루 종일 같은 게임만 하면 뇌에 대한 자극이 줄어들기 때문에 종류를 자주 바꾸는 게 좋다. 유튜브와 같은 디지털 콘텐츠를 즐겨 보는 것은 뇌 건강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권 교수는 “스스로 사고하는 게 아니고 데이터를 입력하기만 하기 때문에 상상하는 등의 뇌 활동이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매일 산에 오르는 사람과 매일 전화로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사람 중 누구의 뇌가 더 건강할까. 권 교수는 “실제 실험 결과 수다를 떠는 사람의 뇌가 더 활성화됐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늘려야 사회적으로 덜 위축되고 불안감이 줄어들면서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국내 치매 정책은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크게 뒤떨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미비한 점은 여전히 남는다. 이 교수는 “치매 환자마다 증세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치료법도 다 달라야 한다”며 “하지만 아직까지는 치료법이 모두 같다. 환자 맞춤형으로 바꾸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요양병원이 단지 치매 환자를 수용하는 차원을 넘어 직접 케어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년 이후 우울증 조심 노인성 우울증은 여러 가지다. 중년 이전부터 앓고 있던 우울증이 노년기에 재발할 수도 있다. 우울한 경향이 있던 사람에게 적응장애나 기분장애 등의 양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우울증은 치매나 파킨슨병의 위험을 높이기도 한다. 또 치매 전 단계에서 깜빡깜빡하는 건망증과 더불어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증세가 우울증이다. 노인 우울증 환자의 40∼50%가 치매 전 단계에서 병원에 온다.정현강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을 앓으면 뇌에서 독성을 유발하는 코르티솔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이것이 신경 퇴행성 변화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모든 우울증 환자가 치매로 악화하지는 않는다. 정 교수는 “의욕 저하, 슬픈 기분, 식욕부진, 불면, 집중력 저하 등의 증세가 동반된 우울증이라면 치매 전 단계인지 정밀 검사를 해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반대로 치매로 인해 우울증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이런 우울증을 2차 우울증이라고 한다. 치매가 생기면 뇌 손상이 되고, 이 때문에 우울증을 일으킬 수 있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분비에 이상이 생긴다. 건강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는 우울증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특히 40대 때부터 신경을 쓰자. 뇌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등 뇌 기능 개선을 위한 모든 방법이 우울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 하는 게 중요하다. 또 긍정적인 사고를 갖도록 노력하는 게 우울증 예방에 좋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서울성모병원은 2014년 심뇌혈관센터를 열었다.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심뇌혈관 질환자가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등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병원은 판단했고, 그 결과물이 특화센터이다. 5년 후인 2019년, 서울성모병원은 이 센터를 심뇌혈관병원으로 확대 개편했다. 그사이에 심뇌혈관 질환자들은 더 빠르게 증가했다. 병원의 대응도 그에 맞춰 더 적극적으로 바꿨다. 독립적이고 규모가 큰 병원급으로 조직을 키운 것이다. 서울성모병원이 심뇌혈관 질환을 전문조직으로 운영한 지 올해로 10년째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장기육 서울성모병원 심뇌혈관병원장(순환기내과 교수)에게 지난 10년 동안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장 교수는 2021년 심뇌혈관병원장에 취임했고, 2년이 지난 작년 9월 두 번째 임기에 들어갔다. ● 내과와 외과의 협진 시스템 구축 심장 질환의 경우 내과적 시술을 할 것이냐, 외과적 수술을 할 것이냐를 놓고 의사들 사이에 의견이 다를 때가 적지 않다. 장 병원장은 “심뇌혈관병원으로 격상한 후로 내과와 외과 의사들 사이의 소통이 활발해져 이런 논란과 갈등이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협진이 잘 된다는 뜻인데, 실제 이런 사례는 많다. 얼마 전이다. 80대 초반의 남성 A 씨가 한밤중에 심하게 배가 아파서 근처 병원에 갔다.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 결과 복부대동맥류 파열로 확인됐다. A 씨는 응급차를 타고 서울성모병원을 찾았다. A 씨는 관상동맥 석회화 현상도 심했다. 협심증의 가능성이 있었다. 이 경우 무작정 수술했다가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심뇌혈관병원 소속 의사들의 단체 대화방에 A 씨의 상황이 곧바로 공유됐다. 단체 대화방에서 교수들이 치료법을 두고 토론을 벌였다. 그 결과 순환기내과 의사가 먼저 관상동맥조영술(심혈관조영술)을 시행해 협심증 등 심장 이상 여부를 확인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다. 곧바로 혈관외과 교수가 투입돼 복부대동맥류 수술을 이어 갔다. A 씨의 응급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장 병원장은 “내과 진료를 하던 도중 외과적 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가 있다. 이 경우에도 곧바로 의사들끼리 소통하고 수술 여부를 결정한다. 심뇌혈관병원 의사들은 전화나 단체 대화방을 통해 24시간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소통과 토론을 통해 시술할 것인지, 아니면 수술할 것인지, 혹은 외과적 수술과 내과적 시술을 병행할 것인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 타비 시술에 강점서울성모병원 심뇌혈관병원은 대동맥 판막 협착증 치료법 중 하나인 타비(TAVI·경피적 대동맥 판막 치환술) 시술로도 유명하다. 장 병원장도 현재까지 1100회 이상 타비 시술을 했다. 판막은 심장의 문이다. 심장이 혈액을 펌프질하면 판막이 닫힌다. 나이가 들면서 이 판막이 딱딱하게 굳어 버릴 수 있다. 심장의 좌심실과 대동맥 사이에 있는 대동맥 판막 협착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되면 혈액이 심장에서 대동맥으로 흐르지 못한다. 호흡곤란, 흉통, 실신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만약 이 정도의 증세가 나타날 정도라면 이미 중증으로 봐야 한다. 신속히 처치하지 않으면 2년 이내에 사망할 우려가 크다. 타비 시술은 가슴을 열지 않고 허벅지의 대퇴동맥을 통해 인공 판막을 집어넣어 손상된 판막을 대체하는 치료법이다. 주로 70세 이상 고령자나 수술 위험성이 높은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된다. 타비 시술에 있어 서울성모병원 심뇌혈관병원은 강점이 많다. 장 병원장은 특히 다른 질병 보유자나 고령자 등 이른바 고위험자의 타비 시술 성적이 좋은 점을 강조했다. 가령 89세의 B 할아버지 사례가 대표적이다. B 할아버지는 외래 진료를 받았는데 협심증이 심했다. 관상동맥에 3개의 스텐트를 삽입했다. 덕분에 흉통은 사라졌는데 숨찬 증세는 가시지 않았다. 대동맥 판막 협착증이 중증이었던 것. 대퇴동맥으로 인공 판막을 넣어야 하는데, 혈관이 상당히 좁아진 말초동맥 폐쇄증이었다. 장 원장은 좁아진 오른쪽 다리 동맥을 스텐트와 풍선으로 확장한 뒤 인공 판막을 삽입했다. B 할아버지는 신장도 좋지 않은 상태였다. 이 때문에 5일에 걸쳐 단계적으로 협심증, 말초동맥 폐쇄증, 대동맥 판막 협착증을 치료했다. 결과는 좋았다. B 할아버지는 곧 일반 병실로 갔다. 장 병원장은 “뇌졸중 고위험 환자인 경우에는 센티넬이란 기구를 사용해 뇌졸중을 예방하면서 판막 시술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최초 기록도 많다. 2022년 장 병원장은 양측 대퇴동맥이 모두 막힌 환자도 타비 시술을 성공했다. 대퇴동맥 대신 겨드랑이 동맥을 통해 타비 판막을 삽입한 것. 이는 국내 처음으로 시도된 시술법이었다. 인공 판막을 넣었는데 다시 좁아지는 환자들이 있다. 이 경우 다시 타비 시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환자에 따라서는 관상동맥과의 높낮이가 맞지 않아 시술이 어려워질 수 있다. 그대로 시술했다가는 관상동맥이 막힐 수도 있다. 따라서 관상동맥이 막히지 않게 판막을 삽입해야 하는데, 이를 ‘바실리카 시술’이라고 한다. 2023년 장 병원장은 국내 처음으로 바실리카 시술에 성공했다. 국소마취만으로 타비 시술을 한다는 것도 장점이다. 대부분의 병원이 전신마취와 국소마취를 혼용한다. 하지만 서울성모병원 심뇌혈관병원의 경우 100% 국소마취를 한다. 또 양쪽 다리의 대퇴동맥을 모두 뚫지 않고 한쪽 혈관만 뚫는다. 덕분에 시술 후 6시간 정도면 걸을 수 있고, 하루 이틀 뒤 퇴원할 수 있다. 서울성모병원 심뇌혈관병원은 국내에 들어온 4종류의 판막을 환자에 맞춰 각각 다르게 사용한다. 장 병원장은 “판막의 안전성이 과거 이슈였다면, 지금은 얼마나 오래 안정적으로 쓸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라며 “10년 동안 환자의 데이터를 축적해 놓았기 때문에 환자 맞춤형으로 시술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서울성모병원 심장뇌혈관병원은 타비 제조 기업이 지정한 ‘감독’ 자격도 얻었다. 이는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 타비 교육을 원하는 의사들에게 교육할 수 있는 자격이다.● 지방 병원과의 협력 강화 장 병원장은 작은 병의원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해결하는 것도 서울성모병원 심뇌혈관병원의 역할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장 병원장은 협력 병의원을 늘려 나갔다. 그 결과 서울성모병원 심뇌혈관병원과 직접 협력하는 병의원은 50여 곳에서 150여 곳으로 3배로 늘었다. 장 병원장은 “심뇌혈관 질환은 시간이 곧 생명이다. 응급 상황이 많다. 지방 병의원에서 해결하지 못하면 즉시 큰 병원으로 환자를 옮겨야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며 “이를 위해서 서울, 경기와 충남 지역을 중심으로 응급환자가 발생할 경우 언제든지 서울성모병원 심뇌혈관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지역환자들에게도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것. 다만 최근에는 전공의가 부족해 교수들만 당직을 서는 상황이라 야간에는 이 시스템을 잠시 중단한 상태다. 서울성모병원 심뇌혈관병원은 올해 초부터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중증 응급 심뇌혈관 진료협력 네트워크 시범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장 병원장은 “심뇌혈관병원은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면 30분 이내에 진단과 처치를 끝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를 위해 전문의가 24시간 상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심뇌혈관병원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 서울성모병원 심뇌혈관병원은 △심혈관센터 △뇌혈관센터 △대동맥센터 △혈관센터 등 4개의 임상센터로 구성돼 있다. 이와 별도로 하이브리드수술센터도 운영되고 있다. 하이브리드수술은 혈관 내 치료법인 스텐트 삽입술과 외과적 치료법인 동맥우회술을 병행하면서 장점을 취하는 치료법이다. 심장 수술의 경우 피부 절개를 최소화하고, 수술 후 회복 시간이 짧다는 장점이 있다. 서울성모병원 심뇌혈관병원은 가톨릭중앙의료원 산하 8개 병원의 심장·뇌혈관 센터의 주축이 되어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도 맡고 있다. 또 각 병원의 심뇌혈관 질환 연구도 지원하고 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2020년이었다. 살짝 쉰 목소리가 났다. 동네 의원에 갔더니 약을 처방해 줬다. 꾸준히 약을 먹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도록 쉰 목소리는 개선되지 않았다. 이재원 씨(69)는 그제야 예민해졌다. 그 무렵부터 지인들로부터 목소리가 이상해진 것 같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이 씨는 정확한 병명을 알기 위해 A병원에 갔다. 후두 조직을 떼어내 검사했다. 후두암 판정이 떨어졌다. 이 씨는 의의로 담담했다. 이 씨는 “나이도 60대 중반을 넘겼겠다, ‘내게도 올 게 왔구나’ 생각했었다. 현실을 거부하면 고통스럽기만 하니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A병원 의료진은 후두암 초기라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치료도 의외로 복잡하지 않았다. 이 씨는 2021년 3월 A병원에서 레이저 절제술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레이저 절제술은 암 초기일 때 시행한다. 레이저로 암만 잘라낸다. 성대를 절제하지 않기 때문에 성대 기능을 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목쉼으로부터 후두암 시작 후두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타났던 목쉼 증세가 후두암 때문이었을까. 나중에 이 씨의 성대 부분 절제술을 시행한 권성근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그렇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쉰 목소리는 후두암의 가장 흔한 초기 증세다. 뚜렷한 이유도 없는데 몇 주에서 몇 달 동안 쉰 목소리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후두암이 더 악화하면 음식을 삼킬 때 통증이 발생하거나 음식을 삼키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귀가 아플 수도 있고, 더 심해지면 호흡 곤란 증세가 나타난다. 이런 경우라면 암이 상당히 진행된 후라고 볼 수 있다. 이 씨의 경우 하루에 두세 갑의 담배를 피웠고 술도 자주 마셨다. 이와 관련해 권 교수는 “흡연과 과음은 후두암의 주요 원인이며 두 가지를 같이 하면 후두암 위험은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A병원에서의 치료는 레이저 절제술로 끝났다. 이후 암 재발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추적 관찰했다. 수년 동안 추적 관찰한 뒤 암이 발견되지 않으면 완치 판정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9개월 만에 암으로 의심되는 혹이 발견된 것. 후두 조직검사를 했는데 ‘고등급 이형성증’ 진단이 나왔다. 쉽게 말하면, 후두암으로 악화하기 직전의 덩어리가 있다는 이야기다. 처음 레이저 절제술을 받았을 때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그사이에 암이 재발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씨는 A병원 의료진이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자 고민 끝에 서울대병원을 찾아갔다. 이때부터 진료를 담당한 의사가 권 교수였다. ● 항암 방사선 치료 이겨내다 권 교수가 보니 암은 성대 상단부와 주변으로 퍼져 있었다. 암의 크기도 만만찮았다. 일반적으로 성대 표면에만 암이 있다면 1기로 진단한다. 하지만 이 씨는 안으로까지 암세포가 퍼져 있었고, 성대를 움직이는 근육들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권 교수는 종합적으로 후두암 3기 진단을 내렸다. 다행히 암이 림프샘이나 원격 장기로 전이되지는 않았다. 권 교수는 치료법을 놓고 고민했다. A병원에서 했던 것처럼 레이저 수술을 먼저 시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암 덩어리가 안쪽 깊숙한 곳에 있어서 불가능해 보였다. 두 번째로 성대 절제 수술을 고려했다. 다만 이 경우 성대의 상당 부분을 잃기 때문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후두가 없어지면 음식물이 식도가 아닌 기도로 들어갈 수도 있다. 이 경우 흡인성 폐렴으로 인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권 교수는 성대를 보존하기 위해 일단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병행하기로 했다. 주말을 빼고 매일 두 치료를 동시에 진행했다. 그렇게 6주 동안 총 30회의 치료를 시행했다. 이 씨도 단단히 마음을 먹고 치료에 임했다. 항암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 무엇보다 체력을 키우는 데 신경 썼다. 자꾸 몸이 처지고 음식이 당겼다. 하지만 막상 먹으려고 하면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시킨 뒤 한두 숟가락만 먹고 나올 때도 많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5회 이상 끼니를 먹기도 했다. 덕분에 체중이 크게 빠지지 않았다. 운동에도 신경을 썼다. 매일 1시간 이상 걸었다. 병원 치료가 있는 날에도 1시간 걷기는 실천했다. 전철을 타고 병원에 가던 중 일부러 서너 역 전에 내려서 걸었다. 진료를 마치고 나서도 똑같이 서너 역을 더 걸어가서 전철을 탔다. ● 후두암 재발, 다시 수술 모든 치료가 순조롭게 되어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항암 방사선 치료를 끝내고 9개월 정도가 흘렀다. 암의 재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추적 검사에서 악성 종양이 다시 확인됐다. 후두암이 재발한 것이다. 이제는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문제는, 수술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이냐였다. 만약 후두를 완전히 들어내면 성대가 없어지면서 발성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게다가 호흡하기 위해 목 아랫부분에 따로 숨구멍을 뚫어야 한다.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권 교수는 “실제로 이런 이유로 인해 수술을 거부하는 환자도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이 씨의 경우 어떻게든 후두를 살려보기로 했다.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 절제하는 것. 성대의 일부 기능을 살리고 호흡도 자연스럽게 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재활 기간이 그만큼 오래 걸리지만 그게 최선의 방법으로 여겨졌다. 2023년 3월, 권 교수는 후두 절제술을 부분적으로 시행했다. 후두에는 7개의 연골이 있다. 그중에서 피열연골은 성대의 문을 여닫는 역할을 한다. 음식이 들어오면 닫히고 숨을 쉴 때 열린다. 원활한 호흡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연골인 것. 권 교수는 이 피열연골만 살리고 주변 부분은 광범위하게 절제했다. 그만큼 암 덩어리가 컸기 때문이다. 수술하는 데 3시간 정도 소요됐다. 현재 마지막 수술 후 1년 7개월이 지난 상태다. 올 8월 검사에서도 재발을 의심할 만한 상황은 없었다. 권 교수는 “1년 이내에 재발할 확률이 가장 높다.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재발 가능성은 많이 낮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재활 치료 이겨내다수술 후 본격적으로 재활 치료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고, 침을 삼키는 것도 불가능했다. 콧속으로는 관이 들어갔다. 이 씨는 “처음에는 이런 모습으로 평생 살아야 하나 걱정됐지만, 그래도 살아보자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재활 치료는 1년 넘게 이어졌다. 매주 1회 병원을 찾아 30분씩 발성 훈련을 했다. 일부러 ‘컥컥’ 소리를 내고 성대에 충격을 줬다. 소리가 발생하려면 성대가 부딪쳐야 하기 때문. 이런 식의 훈련을 통해 성대 주변 근육을 강화해 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이다. 제대로 성대가 부딪쳐야 발성이 이뤄진다. 하루에 두세 갑을 피우던 담배는 완전히 끊었다. 평소에도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말을 많이 하면 목 주변 근육이 좋아져 재활 치료 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점점 목소리가 나면서 신이 났다. 말을 아무리 많이 해도 피로를 느끼지 않았다. 음식을 입으로 먹기까지는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씨는 가장 먼저 입으로 음식을 먹게 된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설날 때였다. 누군가 새우튀김을 가지고 왔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어 보였다. 조심스럽게 새우튀김을 먹었다. 다행히 부작용은 없었다. 이후 식사를 조금씩 하는 훈련을 했고, 올 7월부터는 ‘공식적으로’ 식사를 할 수 있게 됐다. 1년 4개월 만에 온전히 입으로 음식을 먹게 된 것이다. 가끔 사레가 들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먹는 행복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여기까지 오는 데 시련이 작지 않았다. 처음 음식을 먹었을 때 혹시나 기도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하루 종일 자신을 관찰하기도 했다. 거칠고 쉰 목소리도 완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지금의 목소리에서 더 좋아질 가능성도 아주 낮다. 이 씨는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단다. 이 씨는 “아픈 것도 내 복이고, 병을 이기는 것도 내 복이다. 암이 재발했을 때도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목소리만 남을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했고, 힘들더라도 노력하자고 마음먹었다.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권 교수는 “이 씨가 처음에는 삼키는 것도 잘 안 돼 힘들어했다. 하지만 뭐든지 해 보겠다며 적극적이었고, 좌절하지 않고 시도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게 아닐까 싶다. 환자 본인의 투병 의지가 정말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2020년이었다. 살짝 쉰 목소리가 났다. 동네 의원에 갔더니 약을 처방해 줬다. 꾸준히 약을 먹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도록 쉰 목소리는 개선되지 않았다. 이재원 씨(69)는 그제야 예민해졌다. 그 무렵부터 지인들로부터 목소리가 이상해진 것 같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이 씨는 정확한 병명을 알기 위해 A 병원에 갔다. 후두 조직을 떼어내 검사했다. 후두암 판정이 떨어졌다. 이 씨는 의의로 담담했다. 이 씨는 “나이도 60대 중반을 넘겼겠다, 내게도 올 게 왔구나, 생각했었다. 현실을 거부하면 고통스럽기만 하니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A 병원 의료진은 후두암 초기라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치료도 의외로 복잡하지 않았다. 이 씨는 2021년 3월 A 병원에서 레이저 절제술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레이저 절제술은 암 초기일 때 시행한다. 레이저로 암만 잘라낸다. 성대를 절제하지 않기 때문에 성대 기능을 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목쉼으로부터 후두암 시작후두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타났던 목쉼 증세가 후두암 때문이었을까. 나중에 이 씨의 성대 부분 절제술을 시행한 권성근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그렇게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쉰 목소리는 후두암의 가장 흔한 초기 증세다. 뚜렷한 이유도 없는데 몇 주에서 몇 달 동안 쉰 목소리가 이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후두암이 더 악화하면 음식을 삼킬 때 통증이 발생하거나 음식을 삼키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귀가 아플 수도 있고, 더 심해지면 호흡 곤란 증세가 나타난다. 이런 경우라면 암이 상당히 진행된 후라고 볼 수 있다. 이 씨의 경우 하루에 두세 갑의 담배를 피웠고 술도 자주 마셨다. 이와 관련해 권 교수는 “흡연과 과음은 후두암의 주요 원인이며 두 가지를 같이 하면 후두암 위험은 더 커진다”라고 설명했다. A 병원에서의 치료는 레이저 절제술로 끝났다. 이후 암 재발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추적 관찰했다. 수년 동안 추적 관찰한 뒤 암이 발견되지 않으면 완치 판정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9개월 만에 암으로 의심되는 혹이 발견된 것. 후두 조직검사를 했는데 ‘고등급 이형성증’ 진단이 나왔다. 쉽게 말하면, 후두암으로 악화하기 직전의 덩어리가 있다는 이야기다. 처음 레이저 절제술을 받았을 때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그 사이에 암이 재발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씨는 A 병원 의료진이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자 고민 끝에 서울대병원을 찾아갔다. 이때부터 진료를 담당한 의사가 권 교수였다. ● 항암 방사선 치료 이겨내다권 교수가 보니 암은 성대 상단부와 주변으로 퍼져있었다. 암의 크기도 만만찮았다. 일반적으로 성대 표면에만 암이 있다면 1기로 진단한다. 하지만 이 씨는 안으로까지 암 세포가 퍼져 있었고, 성대를 움직이는 근육들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권 교수는 종합적으로 후두암 3기 진단을 내렸다. 다행히 암이 림프절로 전이되거나 원격 장기로 전이되지는 않았다. 권 교수는 치료법을 놓고 고민했다. A 병원에서 했던 것처럼 레이저 수술을 먼저 시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암 덩어리가 안쪽 깊숙한 곳에 있어서 불가능해 보였다. 두 번째로 성대 절제 수술을 고려했다. 다만 이 경우 성대의 상당 부분을 잃기 때문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후두가 없어지면 음식물이 식도가 아닌 기도로 들어갈 수도 있다. 이 경우 흡인성 폐렴으로 인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권 교수는 성대를 보존하기 위해 일단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병행하기로 했다. 주말을 빼고 매일 두 치료를 동시에 진행했다. 그렇게 6주 동안 총 30회의 치료를 시행했다. 이 씨도 단단히 마음을 먹고 치료에 임했다. 항암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 무엇보다 체력을 키우는 데 신경 썼다. 자꾸 몸이 쳐지고 음식이 당겼다. 하지만 막상 먹으려고 하면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시킨 뒤 한두 숟가락만 먹고 나올 때도 많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5회 이상 끼니를 먹기도 했다. 덕분에 체중이 크게 빠지지 않았다. 운동에도 신경을 썼다. 매일 1시간 이상 걸었다. 병원 치료가 있는 날에도 1시간 걷기는 실천했다. 전철을 타고 병원에 가던 중 일부러 서너 역 전에 내려서 걸었다. 진료를 마치고 나서도 똑같이 서너 역을 더 걸어가서 전철을 탔다. ● 후두암 재발, 다시 수술모든 치료가 순조롭게 되어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항암 방사선 치료를 끝내고 9개월 정도가 흘렀다. 암의 재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추적 검사에서 악성 종양이 다시 확인됐다. 후두암이 재발한 것이다. 이제는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문제는, 수술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이냐였다. 만약 후두를 완전히 들어내면, 성대가 없어지면서 발성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게다가 호흡하기 위해 목 아랫부분에 따로 숨구멍을 뚫어야 한다.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권 교수는 “실제로 이런 이유로 인해 수술을 거부하는 환자도 있다”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이 씨의 경우 어떻게든 후두를 살려보기로 했다.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 절제하는 것. 성대의 일부 기능을 살리고 호흡도 자연스럽게 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재활 기간이 그만큼 오래 걸리지만, 그게 최선의 방법으로 여겨졌다. 2023년 3월, 권 교수는 후두절제술을 부분적으로 시행했다. 후두에는 7개의 연골이 있다. 그중에서 피열연골은 성대의 문을 여닫는 역할을 한다. 음식이 들어오면 닫히고 숨을 쉴 때 열린다. 원활한 호흡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연골인 것. 권 교수는 이 피열연골만 살리고 주변 부분은 광범위하게 절제했다. 그만큼 암 덩어리가 컸기 때문이다. 수술하는 데 3시간 정도 소요됐다. 현재 마지막 수술 후 1년 6개월이 지난 상태다. 올 8월 검사에서도 재발을 의심할 만한 상황은 없었다. 권 교수는 “1년 이내에 재발 확률이 가장 높다.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재발 가능성은 많이 낮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 재활 치료 이겨내다수술 후 본격적으로 재활 치료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고, 침을 삼키는 것도 불가능했다. 콧속으로는 관이 들어갔다. 이 씨는 “처음에는 이런 모습으로 평생 살아야 하나 걱정됐지만, 그래도 살아보자며 마음을 다잡았다”라고 말했다. 재활 치료는 1년 넘게 이어졌다. 매주 1회 병원을 찾아 30분씩 발성 훈련을 했다. 일부러 ‘컥컥’ 소리를 내고 성대에 충격을 줬다. 소리가 발생하려면 성대가 부딪쳐야 하기 때문. 이런 식의 훈련을 통해 성대 주변 근육을 강화해 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이다. 제대로 성대가 부딪쳐야 발성이 이뤄진다. 하루에 두세 갑을 피우던 담배는 완전히 끊었다. 평소에도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말을 많이 하면 목 주변 근육이 좋아져 재활 치료 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점점 목소리가 나면서 신이 났다. 말을 아무리 많이 해도 피로를 느끼지 않았다. 음식을 입으로 먹기까지는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씨는 가장 먼저 입으로 음식을 먹게 된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설날 때였다. 누군가 새우튀김을 가지고 왔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어 보였다. 조심스럽게 새우튀김을 먹었다. 다행히 부작용은 없었다. 이후 식사를 조금씩 하는 훈련을 했고, 올 7월부터는 ‘공식적으로’ 식사를 할 수 있게 됐다. 1년 5개월 만에 온전히 입으로 음식을 먹게 된 것이다. 가끔 사레가 들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먹는 행복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여기까지 오는 데 시련이 작지 않았다. 처음 음식을 먹었을 때 혹시나 기도로 들어가지 않을까 걱정하며 하루 종일 자신을 관찰하기도 했다. 거칠고 쉰 목소리도 완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지금의 목소리에서 더 개선될 가능성도 아주 낮다. 이 씨는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단다. 이 씨는 “아픈 것도 내 복이고, 병을 이기는 것도 내 복이다. 암이 재발했을 때도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목소리만 남을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했고, 힘들더라도 노력하자고 마음먹었다.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게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권 교수는 “이 씨가 처음에는 삼키는 것도 잘 안 돼 힘들어했다. 하지만 뭐든지 해 보겠다며 적극적이었고, 좌절하지 않고 시도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게 아닐까 싶다. 환자 본인의 투병 의지가 정말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재원씨 후두암 투병일지〉2020년 음성 변화 발생. 쉰 목소리 나옴.2021년 3월 A 병원에서 후두암 진단, 우측 성대 레이저 절제술 시행2021년 12월 A 병원에서 고등급 이형성증(암 전 단계) 진단.2022년3월초 서울대병원 방문, 후두암 3기 진단림프절 전이와 원격 전이는 없음. 항암 방사선 치료 권고2022년 3월 말 ~ 5월 초 항암 방사선 치료 30회 시행2023년 2월 CT 검사 결과 후두암 재발.2023년 3월 부분 후두절제술 시행.이후 삼킴 재활 치료 시작2024년 5월 삼킴 기능 검사 결과 호전 판단. 식사 중 큰 문제 없음.2024년 7월 입으로 식사 가능하기 시작함.2024년 현재 잔여 종양이나 재발 소견 없음.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권정택 중앙대병원 신경외과 교수-교모세포종 강경아 씨뇌종양 중 최악 등급 교모세포종두통 증세로 시작, 8일 만에 수술정교하면서도 광범위하게 종양 제거항암방사선치료-단독 항암치료 “가족 생각하며 투병 의지 높여완치하려면 환자는 의사 신뢰해야떠도는 가짜 치료 정보 속지 말아야”강경아 씨(55)는 2018년 2월 뇌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그 후 6년 7개월이 흘렀다. 5년을 훌쩍 넘겼으니 사실상 ‘완치’다. 하지만 재발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강 씨의 치료를 맡은 권정택 중앙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뇌종양에는 완치 개념이 없다”며 “5년이 지난 후에도 재발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뇌 검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요즘 강 씨의 몸 상태는 무척 좋다. 강 씨는 “불편한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이전보다 더 자주 여행을 다닌다. 제2의 삶을 만끽한다. 그런 강 씨도 처음에는 여느 암 환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당수의 환자가 암 판정을 받으면 하늘을 원망한다. 강 씨도 그랬다. 처음엔 죄를 짓고 산 것도 아닌데 왜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곱씹었다. 강 씨는 자신의 병이 혹시나 자식들에게 대물림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기도 했다. 권 교수에게 가장 먼저 물어본 질문이 “아이들에게 유전되느냐”였다. 유전 가능성이 없다는 말에 그나마 마음을 놓았다. 부모님께도 자식이 먼저 아픈 불효를 저질렀다는 생각에 너무 죄송스러웠다. 하지만 강 씨는 곧 마음을 추스렸고, 적극적으로 암과 싸웠다. 강 씨의 뇌종양 투병기를 들어봤다. ●뇌종양, 두통과 구토 유발2018년 2월 15일 두통이 시작됐다. 가끔 있는 일로 여기고, 처음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진통제만 사서 먹었다. 그런데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구역질과 구토 증세가 추가됐다. 4일 후 딸의 대학 졸업식에 참석하려고 집을 나섰다. 승용차에서 내리자마자 또다시 구토가 시작됐고, 멈추지 않았다. 얼른 근처에 있는 의원으로 갔다. 의사는 빨리 큰 병원 응급실로 가 보라고 했다. 강 씨는 중앙대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뇌 영상 촬영을 시행했다. 뇌종양이었다. 이와 관련해 권 교수는 “구토는 뇌종양의 가장 흔한 증세”라며 “뇌 안의 압력이 커지면서 토하게 되고, 여기에서 더 심하면 의식이 떨어지거나 뇌전증까지 나타나는 환자도 있다”고 설명했다. 강 씨가 구토 단계에서 병원에 신속하게 왔기에 이후 대처를 잘할 수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뇌종양으로 인한 두통이라면 대체로 잠자고 일어났을 때 증세가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깨어있을 때는 호흡이 원활하니 뇌로 가는 산소도 넉넉하고 뇌 안의 압력도 적정한 강도로 유지된다. 하지만 잠을 자게 되면 호흡량이 줄면서 뇌 안의 산소가 감소하고, 뇌 안의 압력은 올라간다. 권 교수는 “사실 두통만으로는 뇌종양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며 “5년마다 뇌혈관을 포함한 뇌 검사를 받는 게 최선의 예방법”이라고 말했다. ●최악의 교모세포종강 씨의 경우 뇌의 오른쪽 앞부분에 악성종양이 있었다. 암의 크기는 지름이 무려 6㎝에 달했다. 암 덩어리가 큰 것도 문제였지만, 암의 종류가 더 심각한 문제였다. 진단명은 뇌종양의 일종인 교모세포종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뇌종양을 심각도에 따라 4등급으로 나누는데, 교모세포종은 최악인 4등급에 속한다. 교모세포종은 뇌 조직 전반에 발생한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5년 생존율이 10%를 밑돈다. 그만큼 치명적인 암이다. 하지만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권 교수는 “치료제가 속속 개발되고 있고, 의료 기술도 좋아지고 있어서 생존율이 점점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다만 강 씨의 상황은 말 그대로 설상가상이었다. 유전자 검사를 해 보니 악성종양이 증식하는 비율의 수치가 너무 높았다.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가 있는데, 그것마저 강 씨는 작동하지 않았다. 쉽게 말하자면 암이 더 빨리 퍼지고, 약효가 잘 듣지 않는 유형이었다. 권 교수는 “강 씨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았는데, 이런 경우 6개월에서 1년 정도밖에 살지 못할 수도 있다”며 “수술하더라도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권 교수는 수술을 선택했다. 권 교수는 “어려운 수술이지만, 수술하지 않을 경우 수명이 6개월도 안 될 거로 생각했다”며 “다행히 광범위하게 암을 절제할 수 있는 부위여서 과감하게 수술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말했다. 신속하게 수술 날짜를 잡았다. 4일 후 강 씨는 수술대에 올랐다. 뇌의 앞쪽 부위를 크게 절제한 뒤 암 덩어리를 들어냈다. 다른 수술과 달리 뇌 수술은 미세한 신경 조직이라도 잘못 건드리면 전신마비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별도의 ‘수술 감시장치’를 사용했다. 수술을 진행하면서 환자의 감각이 떨어지는지, 팔다리는 움직이는지 등을 수시로 파악하는 것. 강 씨 수술의 경우 다행히도 이런 상황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모든 수술을 마치는 데는 한나절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다. 권 교수는 “요즘에는 뇌 항법 장치 등 장비들이 더 첨단화하면서 수술 시간도 줄이고 더 안전하게 암을 제거하는 추세다”고 말했다. ●“가족 생각하며 항암치료 이겨내”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하지만 치료가 끝난 건 아니었다. 수술하고 한 달이 지난 후 곧바로 항암방사선치료(CCRT)에 돌입했다.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따로따로 하지 않고 한꺼번에 진행하는 방식이다. 권 교수는 “교모세포종의 경우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동시에 하는 것이 표준 치료법이다”고 말했다. 강 씨는 주말 이틀을 빼고 평일에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치료를 받았다. 이런 식의 항암방사선치료는 약 40일 동안 진행됐다. 이제 다 끝났나 싶더니 아니었다. 곧바로 단독 항암치료에 돌입했다. 한 달에 5회씩 총 6주기, 그러니까 30회의 단독 항암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이 모든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강 씨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투병 의지를 다졌다. 그래야 할 이유도 있었다. 강 씨가 수술 후 퇴원한 뒤 집에 갔을 때였다. 딸아이가 교모세포종에 대해 검색하고 나서 울고 있는 것을 봤다. 그때 강 씨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병을 이겨내고 말겠다”고 결심했다.항암치료를 받다 보니 입맛이 뚝 떨어졌다. 헛구역질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꾹 참고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많이 먹었다. 보통 암 환자들은 항암치료 중에 제대로 먹지 못해 살이 쭉 빠진다. 하지만 강 씨는 오히려 체중이 늘었다.뇌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던 해가 2018년 여름이었다. 기록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하지만 강 씨는 더위에 맞서면서 매일 1시간 반 정도씩 산에 올랐다. 운동도 쉽지는 않았다. 축축 처졌다. 그래도 체력이 닿는 대로 높이 올라갔다. 이렇게 강 씨는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견뎌냈다. ●“의사를 신뢰해야”강 씨는 “의료진은 내 생명만 살린 게 아니라 가족의 삶도 찾아줬다”고 말했다. 강 씨는 암 환자의 완치에 절대 필요한 덕목으로 ‘의료진에 대한 믿음’을 꼽았다. 사실 환자들에게 의사들은 소통하기 껄끄러운 대상일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말하는 의사를 믿고 따르기란 쉽지 않다. 그 때문에 또 다른 ‘특효 처방’을 찾는 환자들도 있다. 하지만 강 씨는 절대로 그러지 않았다. 오직 권 교수의 처방만 따랐다. 현실적으로는 많은 암 환자들이 이러지 못한다. 암에 걸린 후 더 많은 정보를 찾기 위해 인터넷 카페와 같은 환자 커뮤니티에 가입한다. 문제는, 이 커뮤니티에서 떠도는 정보가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강 씨도 인터넷 카페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다. 하지만 권 교수의 처방에 어긋나는 방법은 아예 시도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잘했고 강 씨 자신이 잘 투병하고 있으니 다른 조치가 필요 없다는 권 교수의 처방을 믿고 따른 것이다. 강 씨는 다른 암 환자에게도 이 점을 꼭 당부하고 싶다고 했다.“환자의 절박한 마음을 이용해 치료 효과가 높다며 특정 상품을 팔려는 사람들이 많이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현혹되기 쉬운데, 그러지 마세요. 의료진을 믿고 따르는 게 옳습니다.”<강경아 씨 교모세포종 투병 일지>2018년 2월 15일 두통 발생. 진통제 효과 없음 이후 구토 증세까지 생김2018년 2월 19일 중앙대병원 응급실 직행. 뇌종양 진단(교모세포종)2018년 2월 23일 뇌종양 제거 수술2018년 3월~5월 항암방사선치료(CCRT) 시행 (주 5일, 총 40회)2018년 5월~10월 단독항암치료 추가 시행 (한달에 5회씩 6주기, 총 30회)2018년 10월 이후 정기적으로 재발 여부 추적 검사 진행2024년 2월 뇌CT 검사에서 종양 재발 소견 없음 확인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강경아 씨(55)는 2018년 2월 뇌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그 후 6년 7개월이 흘렀다. 5년을 훌쩍 넘겼으니 사실상 ‘완치’다. 하지만 재발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강 씨의 치료를 맡은 권정택 중앙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뇌종양에는 완치 개념이 없다”며 “5년이 지난 후에도 재발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뇌 검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요즘 강 씨의 몸 상태는 무척 좋다. 강 씨는 “불편한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이전보다 더 자주 여행을 다닌다. 제2의 삶을 만끽한다. 그런 강 씨도 처음에는 여느 암 환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당수의 환자가 암 판정을 받으면 하늘을 원망한다. 강 씨도 그랬다. 처음엔 죄를 짓고 산 것도 아닌데 왜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곱씹었다. 강 씨는 자신의 병이 혹시나 자식들에게 대물림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기도 했다. 권 교수에게 가장 먼저 물어본 질문이 “아이들에게 유전되느냐”였다. 유전 가능성이 없다는 말에 그나마 마음을 놓았다. 부모님께도 자식이 먼저 아픈 불효를 저질렀다는 생각에 너무 죄송스러웠다. 하지만 강 씨는 곧 마음을 추슬렀고, 적극적으로 암과 싸웠다. 강 씨의 뇌종양 투병기를 들어봤다.● 뇌종양, 두통과 구토 유발 2018년 2월 15일 두통이 시작됐다. 가끔 있는 일로 여기고, 처음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진통제만 사서 먹었다. 그런데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구역질과 구토 증세가 추가됐다. 4일 후 딸의 대학 졸업식에 참석하려고 집을 나섰다. 승용차에서 내리자마자 또다시 구토가 시작됐고, 멈추지 않았다. 얼른 근처에 있는 의원으로 갔다. 의사는 빨리 큰 병원 응급실로 가 보라고 했다. 강 씨는 중앙대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뇌 영상 촬영을 했다. 뇌종양이었다. 이와 관련해 권 교수는 “구토는 뇌종양의 가장 흔한 증세”라며 “뇌 안의 압력이 커지면서 토하게 되고, 여기에서 더 심하면 의식이 떨어지거나 뇌전증까지 나타나는 환자도 있다”고 설명했다. 강 씨가 구토 단계에서 병원에 신속하게 왔기에 이후 대처를 잘할 수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뇌종양으로 인한 두통이라면 대체로 잠자고 일어났을 때 증세가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깨어 있을 때는 호흡이 원활하니 뇌로 가는 산소도 넉넉하고 뇌 안의 압력도 적정하게 유지된다. 하지만 잠을 자게 되면 호흡량이 줄면서 뇌 안의 산소가 감소하고, 뇌 안의 압력은 올라간다. 권 교수는 “사실 두통만으로는 뇌종양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며 “5년마다 뇌혈관을 포함한 뇌 검사를 받는 게 최선의 예방법”이라고 말했다. ● 최악의 교모세포종 강 씨의 경우 뇌의 오른쪽 앞부분에 악성종양이 있었다. 암의 크기는 지름이 무려 6cm에 달했다. 암 덩어리가 큰 것도 문제였지만, 암의 종류가 더 심각한 문제였다. 진단명은 뇌종양의 일종인 교모세포종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뇌종양을 심각도에 따라 4등급으로 나누는데, 교모세포종은 최악인 4등급에 속한다. 교모세포종은 뇌 조직 전반에 발생한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5년 생존율이 10%를 밑돈다. 그만큼 치명적인 암이다. 하지만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권 교수는 “치료제가 속속 개발되고 있고, 의료 기술도 좋아지고 있어서 생존율이 점점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강 씨의 상황은 말 그대로 설상가상이었다. 유전자 검사를 해 보니 악성종양이 증식하는 비율의 수치가 너무 높았다.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가 있는데, 그것마저 강 씨는 작동하지 않았다. 쉽게 말하자면 암이 더 빨리 퍼지고, 약효가 잘 듣지 않는 유형이었다. 권 교수는 “강 씨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았는데, 이런 경우 6개월에서 1년 정도밖에 살지 못할 수도 있다”며 “수술하더라도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권 교수는 수술을 선택했다. 권 교수는 “어려운 수술이지만, 수술하지 않을 경우 수명이 6개월도 안 될 거로 생각했다”며 “다행히 광범위하게 암을 절제할 수 있는 부위여서 과감하게 수술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말했다. 신속하게 수술 날짜를 잡았다. 4일 후 강 씨는 수술대에 올랐다. 뇌의 앞쪽 부위를 크게 절제한 뒤 암 덩어리를 들어냈다. 다른 수술과 달리 뇌 수술은 미세한 신경 조직이라도 잘못 건드리면 전신 마비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별도의 ‘수술 감시장치’를 사용했다. 수술을 진행하면서 환자의 감각이 떨어지는지, 팔다리는 움직이는지 등을 수시로 파악하는 것. 강 씨 수술의 경우 다행히도 위험한 상황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모든 수술을 마치는 데는 한나절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다. 권 교수는 “요즘에는 뇌 항법 장치 등 장비들이 더 첨단화하면서 수술 시간도 줄고 더 안전하게 암을 제거하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 “가족 생각하며 항암치료 이겨내”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하지만 치료가 끝난 건 아니었다. 수술하고 한 달이 지난 후 곧바로 항암방사선치료(CCRT)에 돌입했다.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따로따로 하지 않고 한꺼번에 진행하는 방식이다. 권 교수는 “교모세포종의 경우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동시에 하는 것이 표준 치료법이다”라고 말했다. 강 씨는 주말 이틀을 빼고 평일에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치료를 받았다. 이런 식의 항암방사선치료는 약 40일 동안 진행됐다. 이제 다 끝났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곧바로 단독 항암치료에 돌입했다. 한 달에 5회씩 총 6주기, 그러니까 30회의 단독 항암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이 모든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강 씨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투병 의지를 다졌다. 그래야 할 이유도 있었다. 강 씨가 수술 후 퇴원한 뒤 집에 갔을 때였다. 딸아이가 교모세포종에 대해 검색하고 나서 울고 있는 것을 봤다. 그때 강 씨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병을 이겨내고 말겠다”고 결심했다. 항암치료를 받다 보니 입맛이 뚝 떨어졌다. 헛구역질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꾹 참고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많이 먹었다. 보통 암 환자들은 항암치료 중에 제대로 먹지 못해 살이 쭉 빠진다. 하지만 강 씨는 오히려 체중이 늘었다.뇌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2018년의 여름은 기록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하지만 강 씨는 더위에 맞서면서 매일 1시간 반 정도씩 산에 올랐다. 운동도 쉽지는 않았다. 축축 처졌다. 그래도 체력이 닿는 대로 높이 올라갔다. 이렇게 강 씨는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견뎌냈다. ● “의사를 신뢰해야”강 씨는 “의료진은 내 생명만 살린 게 아니라 가족의 삶도 찾아줬다”고 말했다. 강 씨는 암 환자의 완치에 절대 필요한 덕목으로 ‘의료진에 대한 믿음’을 꼽았다. 사실 환자들에게 의사들은 소통하기 껄끄러운 대상일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말하는 의사를 믿고 따르기란 쉽지 않다. 그 때문에 또 다른 ‘특효 처방’을 찾는 환자들도 있다. 하지만 강 씨는 절대로 그러지 않았다. 오직 권 교수의 처방만 따랐다. 현실적으로는 많은 암 환자들이 이러지 못한다. 암에 걸린 후 더 많은 정보를 찾기 위해 인터넷 카페와 같은 환자 커뮤니티에 가입한다. 문제는, 이 커뮤니티에서 떠도는 정보가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강 씨도 인터넷 카페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다. 하지만 권 교수의 처방에 어긋나는 방법은 아예 시도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잘했고 강 씨 자신이 잘 투병하고 있으니 다른 조치가 필요 없다는 권 교수의 처방을 믿고 따른 것이다. 강 씨는 다른 암 환자에게도 이 점을 꼭 당부하고 싶다고 했다.“환자의 절박한 마음을 이용해 치료 효과가 높다며 특정 상품을 팔려는 사람들이 많이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현혹되기 쉬운데, 그러지 마세요. 의료진을 믿고 따르는 게 옳습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서승현 씨(37)는 올해 7월 첫딸을 출산했다. 과정은 험난했다. 일단 나이가 많은 고령 임신인 데다 이미 당뇨병이 있었고, 자궁내막암 진단까지 받았다. 임신한 후로 고혈압, 비만, 갑상샘기능저하증, 자궁경관무력증 등 여러 병이 추가로 생겼다. 전형적인 고위험 산모다. 임신중독증도 나타났다. 임신중독증은 고혈압이 원인이 돼서 나타난다. 초기에는 단순히 혈압만 오르지만 더 진행되면 부종, 두통, 시야장애 등이 나타날 수도 있다. 때로는 경련 발작을 일으키기도 한다. 임신중독증이 심하면 태반이나 태아로 혈류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태아 성장이 멈추거나 사망하는 치명적인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서 씨는 역경을 이겨내고 아기를 출산했다. 비록 27주 만에 조산했지만, 아기는 별 탈 없이 잘 자랐다. 12일에는 기다리던 퇴원도 했다. 서 씨의 진료를 담당한 오수영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여러 차례 어려움이 닥쳤는데, 그때마다 모두 이겨낸 사례”라고 말했다. ● 자궁내막암과의 싸움 2021년 11월이었다. 주기적으로 그랬던 것처럼 월경이 시작됐다. 다만 월경 기간이 평소보다 길어졌다. 출혈량도 급격하게 늘었다. 서 씨는 “피가 막 쏟아진다고 느낄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런 증세가 금방 사라질 줄 알았지만 무려 2주 동안 계속됐다. 서 씨는 혹시나 해서 동네 산부인과에 갔다. 조직검사를 받았다. 의사의 표정이 심상찮았다. 소견서를 써주며 상태가 좋지 않으니 큰 병원에 가 보라고 했다. 서 씨는 암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하지만 크게 겁먹지는 않았다. 빨리 치료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서 씨는 “펑펑 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잖나. 정신 차리고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서 씨는 삼성서울병원에 갔다. 예상했던 대로 자궁내막암이었다. 암 크기는 약 1.2cm. 병기는 1기로 진단됐다. 암이 확실하기에 수술을 지체할 수 없었다. 외래 진료를 받고 3일 후에 곧바로 이정원 산부인과 교수가 수술에 돌입했다. 자궁내막에서 암을 긁어내는, 일명 자궁소파술을 시행했다. 가임기 여성의 경우 일반적으로 자궁을 완전히 들어내는 수술을 하지는 않는다. 임신 가능성을 보고 자궁을 보존하기 위해 암 조직만 긁어내는 수술을 한다. 서 씨 또한 출산 계획이 있어 자궁소파술을 시행했다. 가임기 여성들은 수술 후 항암치료를 하지 않고, 호르몬 요법을 시행한다. 서 씨도 그랬다. 호르몬 요법을 시행하면서 3개월마다 조직검사를 통해 암 추가 발생 여부를 확인했다. 보통은 6개월이 지난 후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으면 일단 치료된 것으로 보고 임신을 허용한다. 하지만 서 씨는 그러지 못했다. 6개월이 지난 후 암이 다시 발견됐다. 아직 완전하게 치료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서 씨는 6개월 전과 똑같은 치료를 반복해서 받아야 했다. 2022년 12월, 조직검사에서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모든 게 정상이었다. 의료진은 1차 치료를 종결했다. 일반적으로 이런 치료를 1년 동안 진행해서 좋아지지 않으면 자궁을 절제하는 수술을 검토하게 된다. ● 자연 임신에 성공했지만 서 씨 부부는 아기를 원했다. 자궁을 절제하지 않고 보존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1년의 치료를 견뎌내니 비로소 임신과 출산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당장 아기가 들어서지는 않았다. 서 씨 부부는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을까도 생각했다. 이런 고민을 하던 중에 2024년 1월 자연 임신이 됐다. 세상이 그렇게 밝아 보일 수가 없었다. 이때부터 서 씨는 오 교수의 진료를 받게 됐다. 오 교수에 따르면 서 씨는 고위험 산모에 해당한다. 일단 35세 이후인 데다 초산이다. 자궁내막암 1차 치료를 끝냈지만, 완치까지는 3년 이상의 기간이 남았다. 여전히 암 환자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암에 걸리기 2년 전에는 당뇨병 진단까지 받았다. 임신하고 난 후에는 몸 상태가 더 나빠졌다. 갑상샘기능저하증이 먼저 생겼다. 혈압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체중도 늘어났다. 혈당도 높아졌다. 임신중독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 급기야 입원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임신 18주째였던 올해 5월, 서 씨는 처음 입원했다. 자궁경관무력증 진단을 받았다. 자궁경부가 약해져 열리는 병이다. 열린 자궁 입구를 통해 양막이 보이거나 일부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 이 경우 자칫 유산이나 조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오 교수는 자궁경부를 봉합하는 수술을 시행했다. 이후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거의 매달 병원에 가야 했다. 6월에도 배에 통증이 나타나서 다시 병원에 가야 했다. 똑같은 병이었다. 7월에도 그랬다. 이런 식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몸 상태는 임신 25주째부터 급격하게 나빠졌다. 수축기 혈압을 기준으로 140mmHg를 넘어서면 고혈압으로 보는데, 서 씨의 혈압은 180mmHg까지 올라갔다. 임신하면 없던 당뇨병도 생긴다. 이를 임신성 당뇨라고 한다. 서 씨의 경우 이 무렵 혈당이 dL당 230mm까지 올랐다. 보통 식전 혈당이 dL당 126mm를 넘으면 당뇨병으로 진단한다. 또 온몸이 부어올랐다. 몸이 부어오르면서 체중은 일주일 사이에 20kg이 늘었다. 살을 손가락으로 꾹 누르면 튀어나오지 않을 정도로 부종이 심했다.● 27주 만에 조산서 씨가 네 번째 입원하고 10일째 되는 날이었다.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오 교수는 조기 진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렇게 됐다. 임신 27주째를 맞아 새벽에 진통이 시작됐다. 서 씨는 자연분만으로 딸을 낳았다. 오 교수는 “혈압과 당뇨 등 여러 합병증이 있어서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면 산모의 회복이 매우 더딜 수 있었는데, 아기의 머리가 아래쪽을 향한 덕분에 자연분만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아기의 체중은 800g이었다. 보통 27주 정도면 체중이 1kg은 돼야 한다. 태아의 발육 상태가 다소 지연된 것. 신생아 중환자실(NICU)에서 아기를 돌보기 시작했다. 아기가 정상적으로 나오면 울음을 터뜨린다. 호흡이 되고 있다는 증거다. 폐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면 아기 스스로 호흡하지 못한다. 이 경우 기도삽관이나 산소치료 등 여러 방법으로 호흡을 돕는다. 서 씨 아기의 경우 폐의 기능이 70∼80% 정도 작동했다. 곧바로 산소치료를 시작했다. 아기의 생명력은 강했다. 놀랍게도, 단 하루 만에 다른 장비의 도움 없이 스스로 호흡하기 시작했다. 몸무게도 쑥쑥 늘어 어느덧 2kg에 육박했다. 중환자실을 나와 일반 병실에서 보살핌을 받았다. 우유와 모유를 모두 잘 먹었다. 스스로 젖병을 빠는 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 교수는 “조산으로 태어났지만, 정상으로 돌아가는 속도가 무척 빠르다”고 했다. 서 씨의 아기는 12일, 마침내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 남편의 지지가 정말 중요서 씨는 요즘도 자궁내막암, 당뇨 등 질병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2, 3개월마다 병원을 찾는다. 몸은 많이 건강해졌다. 부종은 거의 다 빠졌다. 체중도 임신 전과 비슷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달라진 점도 있다. 예전에는 운동이라곤 해 본 적이 없었다. 병을 얻고 힘겹게 출산 과정을 겪고 나서 운동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요즘에는 매일 30분씩 걷는다. 덕분에 혈당과 혈압도 떨어지고 있다. 오 교수와 서 씨 모두 “과정이 힘들었지만, 결과는 해피 엔딩”이라며 웃었다. 오 교수는 “서 씨의 밝은 성격이 역경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임상에서 많은 고위험 산모를 접하는데, 덜 걱정하고 편안하게 생각하려는 환자일수록 결과가 좋을 때가 많다. 물론 태아에게도 훨씬 좋은 영향을 미친다. 발생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서 씨도 비슷한 생각이다. 서 씨는 “힘들 때 찡그리거나 꽁하고 있으면 몸이 더 아프더라. 일부러 웃고 떠들며, 안 좋은 생각은 하지 않으려 했다. 그랬더니 다 좋아진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남편의 역할도 무척 중요하다고 했다. 오 교수는 “고위험 산모들은 모든 고통을 모성애로 견딘다. 그럴 때 남편의 지지가 절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